【강원도 양양=신아람 박세인 기자】 2년 만에 떠난 봄맞이 입사 동기 여행. 강원도 양양을 찾은 지난 4일은 공교롭게도 '그 날'이었습니다. 양양과 '천년고찰' 낙산사에 화재가 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죠. 양양의 문화재이자 유명 관광지인 낙산사를 찾기 전 포털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낙산사 산불 10년
낙산사 화재는 봄철 대형 화재사고의 사례로 사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됩니다. 금강산, 설악산과 함께 관동 3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는 오봉산이 지역을 덮친 산불로 피해를 봤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보물 제499호 칠층석탑, 부처님 진신사리가 출현했다는 보물 제1723호 공중사리탑 등이 모인 낙산사는 전소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으니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케이웨더 반기성 기후산업연구소장에 따르면 2005년 4월4일 오후 11시50분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사교리 일대 야산에서 발생한 불은 다음날인 5일 낙산사를 집어삼켰습니다.
불은 낙산사를 포함해 가옥 등 40여개 동과 산림 150만여㎡를 태운 것으로 집계됐고 낙산도립공원 일대에는 주민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재난사태가 선포되기는 양양·낙산사 산불이 처음이었습니다.
6일 새벽 진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산불이 설악산 입구까지 확산되자 경찰 2000여명을 투입하고 물대포를 투입하는 기록도 세워졌죠. 사건 며칠 전 비무장지대 산불이 남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하던 터라 총력을 기울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재난사태가 발령된 후 산불진압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며 산불은 꺼졌지만 피해는 예상보다 컸고, 정부는 7일 양양군 지역을 다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습니다.
■낙산사는 치유 중
다행히 사건 10년 후 찾은 낙산사는 '상처 입은 후 새 살이 돋았다'는 걸 증명하듯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낙산사로 올라가는 언덕 길. 흐린 날씨였지만 4월 초 주말을 맞이해 사찰을 찾은 관광객들로 북적였습니다. 매표소 관계자 말로는 많을 때 하루에 만 명도 이 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낙산도립공원 보호안내문 표지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양양군수 명의의 이 안내문에는 '주차, 야영, 취사, 쓰레기투기 지정 외 상행위 포장마차의 출입을 금지하고 폭죽을 쓰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매표소를 통과한 후 의상기념관에 먼저 들렀습니다. 창건주인 의상대사의 유물이 봉안된 건물 가운데에는 10년 전 화재 때 소실됐던 낙산사 동종 보물(제479호)의 잔해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새카맣게 타버린 동종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낙산사 의상기념관
사찰 주변은 널찍하고 깨끗했습니다. 주변에 음식물을 들고 다니는 관광객도 보이지 않았고, 소화전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습니다. 노약자를 위한 나무 손잡이도 있었고요.
동해 바다가 한 눈에 들여다보이는 경관을 오롯이 담은 시구를 새긴 비석, 보타전, 해수관음상 등 낙산사의 이모저모를 둘러보았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위에 철썩철썩 부딪히는 파도를 보니 가슴이 탁 트이더군요.
낙산사 해수관음상
다음 달에 있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전등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넉넉한 인상의 스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낙산사의 중심법당인 원통보전과 다른 사찰을 옮겨다녔다는 이 스님은 10년 전 화재 2주 후 다시 이곳을 찾아 정성들여 복원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낙산사가 재개장한 후 다시 오셨다고 하네요. 지금은 낙산사 산내암자인 홍련암에서 스님 세 분과 함께 지내신다고 합니다.
낙산사 홍련암 사진=박종원 기자
낙산사 의상대
"홍련암 옆에 사람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있었는데, 정렴스님이라는 분이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한다고 요사채 아래에 매립된 흙을 싹 다 파내셨죠. 저 축대쌓은 걸 보세요. 돌을 갖다가 저렇게 하나하나 조립해서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해놨다는 게 대단하죠. 단순히 땅을 메우는 게 아니라 예전 성지 모습 그대로 가꾸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셨죠. 화재 당시 이 뒤쪽 나무까지 다 탔는데 이 홍련암이 유일하게 안탔습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게 참 고맙죠."
낙산사에 대한 스님의 애정이 엿보이는 말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성숙한 시민의식'. '관음송 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합니다'는 안내판이 두 개나 버젓이 있는데도 관동팔경을 보겠다며 누각 위로 저벅저벅 올라가는 시민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를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모두의 염원과 정성으로 일궈낸 낙산사 복원, 관동팔경은 누각 옆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낙산사를 내려오며 고려대학교 사회봉사활동 단체 학생들과 마주쳤습니다. 식목일을 하루 앞두고 근처에 불량한 나무를 제거하는 숲 가꾸기 활동을 하러 왔다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낙산사. 동기 간의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hiara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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