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이재훈 칼럼] '메이크 인 코리아'는 어디 갔나

성장 DNA를 망각한 한국.. 한국식 성장 모델 택한 인도

[이재훈 칼럼] '메이크 인 코리아'는 어디 갔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1박2일의 짧은 방한 일정 중 박근혜 대통령과 수많은 한국 기업인을 만나 치열한 투자유치 활동을 펼쳤다. 그런 모디 총리가 빠듯한 시간을 쪼개 딱 한 곳 산업 현장을 방문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다. 인도 내 조선소 설립과 기술이전 등 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 실질적 이유였다. 그러나 그의 울산조선소 방문은 상징적 의미가 훨씬 컸다.

모디노믹스(모디 총리의 경제정책)의 핵심은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인도에서 만들자)', 즉 제조업 육성정책이다. 인도를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투자를 유치하고 세계의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모디 총리는 구자라트 주지사 시절(2001~2014년)부터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해왔다. 한국의 제조업 성장, 인적자원 개발, 이를 위한 행정지원에서 인도의 성공 열쇠를 찾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현대중공업을 들곤 했다. 모디 총리는 지난해 8월 한 연설에서 "한국은 조선업을 통해 제조업을 발달시키고 막대한 고용을 창출했으며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외국 투자를 유치했다. 우리는 이를 모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도 자본도 없던 1970년대 초 정주영 현대 회장은 맨손으로 현대중공업을 일으켰다. 울산 미포만 항공사진 한 장을 내밀며 수주를 하고 지폐에 있는 거북선 그림을 영국 금융기관에 보여주고 투자를 받아낸 불굴의 기업가정신,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준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에 감명 받아 모디 총리도 같은 꿈을 꾸게 됐을 것이다.

조선업은 수만명 인력을 고용하고 수천개 협력업체를 먹여살릴 수 있는 산업이다. 모디 총리가 육성 대상 25개 제조업 중 조선업을 첫손으로 꼽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규제완화와 투자유치 등을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을 현재의 15%에서 5년 내 25%로 끌어올려 매년 120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메이크 인 인디아'의 원조는 '메이크 인 코리아'였던 셈이다. 그리고 모디 총리는 '메이크 인 코리아'의 원조라 할 현대중공업을 둘러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모디 총리 방한을 계기로 '넥스트 차이나' 인도를 기회의 땅으로 삼아 적극 진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메이크 인 인디아'에 공감하면서도 '메이크 인 코리아'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제조업을 통한 성장모델이 한국에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일까. 기업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오프쇼어링과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일까.

한·인도 양국은 정상회담에서 '메이크 인 인디아' 프로젝트와 한국의 '제조업 3.0' 정책을 연계해 협력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제서야 우리도 '제조업 3.0'이란 제조업 육성정책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됐다. 그런데 내용을 찾아보니 이 정책의 실체가 모호하다.

제조업 육성정책은 인도나 중국 같은 신흥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리쇼어링(국외진출 기업의 본국 유턴)에 열을 올렸고 성과가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부터 공장 본국 이전에 따른 세제혜택, 비용지원 등을 내건 '리메이킹 아메리카' 정책을 편 결과 애플, 제너럴모터스(GM), 제너럴일렉트릭(GE), 구글 등 여러 글로벌기업의 미국 내 생산비중이 확대됐다. 일본도 아베 신조 정부의 지원과 엔저 현상에 힘입어 도요타, 혼다, 소니, 캐논 등이 국내 생산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리쇼어링 붐에 따라 고용이 늘면서 일본의 올 1·4분기 청년실업률은 6.1%까지 떨어졌다.
우리나라 청년실업률 10.9%와 비교가 안 된다.

'메이크 인 인디아' '메이크 인 USA' '메이크 인 재팬'의 구호 속에 '메이크 인 코리아'는 보이지 않는다. 반기업 정서와 요지부동의 투자 규제, 경직된 노동시장, 실종된 기업가정신이 우리 제조업을 옭아매고 있다. 모디가 부러워한 한국식 성장모델은 어디로 갔나.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