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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유승민의 선택

국회법 양보에 십자포화.. '新보수'에 대한 본격 도전

[이재훈 칼럼] 유승민의 선택

국회의 시행령 수정요구권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다. 야당의 '끼워팔기' 요구를 받아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이하 직함 생략)가 궁지에 몰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은 마비 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될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은 "청와대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했는데도 위헌 소지가 다분한 법안을 합의해준 이유가 뭐냐"며 그의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청와대는 당정협의 중단까지 거론했다.

애초 국회법 사태의 본질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충돌로 받아들여졌다.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권한 침해, 즉 삼권분립 위배 논란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당과 청와대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본질은 오히려 당·청 충돌, 구체적으로 박 대통령과 유승민의 권력 충돌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유승민 원내대표 체제에 대한 청와대의 누적된 불만이 마침내 폭발했다는 것이다. 우선 유승민의 해명이 안이했다. 그는 "국회법에 (정부가) 시행령을 수정해야 할 강제성은 없다"며 "법률과 시행령 사이 충돌에 대한 판단은 법원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반대 입장이다. 이종걸 새정련 원내대표는 "개정 국회법은 당연히 강제성이 있다"고 못박았다. 새정련은 심지어 임금피크제·연장근로와 관련한 근로기준법 시행령 등 14개를 상위법 위반 사례로 제시하고 뜯어고치겠다며 벼르고 있다. 문제는 국회법에 강제성이 있다면 위헌 소지도 크다는 게 다수 법학자들의 견해라는 점이다.

유승민은 새누리당 내부에서 논쟁적 인물이다. '원조 친박'이었다가 '탈박' '반박'으로 변신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정통 TK(대구·경북) 출신이면서도 원칙적 보수에 머물지 않고 중도 좌파 이념을 일부 수용하는 개혁적 보수, 신(新)보수를 지향한다. 보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혀 광범위한 중도층의 지지를 여당에 끌어들일 수 있는 적임자라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보수의 정체성을 흐트러뜨리는 이단아라는 혹평도 있다.

유승민은 지난 2월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후 박근혜정부의 정책 기조를 거스르는 소신 발언을 자주 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당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 후에도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중부담-중복지와 증세론을 내세워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웠다.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역설하며 "여야가 진영을 넘어 합의하는 정치를 하자"고 제안해 야당의 박수를 받았다.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를 통한 세수확보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증세론에 제동을 걸었다. 대선 공약인 '증세없는 복지'를 여당 원내대표가 반박하니 속이 편할 리 없었다. 유승민이 초이노믹스로 불리는 단기 경기부양책을 비판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유승민식 합의정치의 첫 시험대가 바로 공무원연금 개혁이었다. 그런데 그는 합의에 지나치게 급급했던지 야당의 연계 전략에 질질 끌려다니다가 요구대로 합의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나치게 순진해 야당에 이용당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회법 개정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다. 리얼미터 조사에 다르면 개정 국회법이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의견(36%)이 '위배되지 않는다'(30%)보다 많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옳다'는 반응(44%)이 다수였다.

물론 국회법 개정의 책임을 유승민이 전부 뒤집어쓰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여당 원내대표로서 제대로 처신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도 절반 넘게 남아 있다. 이 시점에서 그가 대통령과 충돌한다면 이기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돌아가는 것이 옳다.
야당과 국회법 재협상을 해서 위헌소지를 없애는 것이 그중 나은 선택지라고 본다. 그가 개혁적 보수를 실현하려면 차근차근 여당 내부부터 설득해야 한다. 원내대표로서 협상 능력도 보여줘야 할 것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