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곽인찬 칼럼] 메르스만큼 무서운 인구절벽

출산율 높여야 소비 살아.. "한국은 일본을 22년 후행"

[곽인찬 칼럼] 메르스만큼 무서운 인구절벽

전염병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여기에 우중충한 경제 이야기를 덧대자니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고령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령화의 저주다.

해리 덴트라는 사람이 있다. 경제예측 전문기관인 덴트연구소의 창업자다.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이름을 날렸다. 격주간지 포천은 덴트를 '100대 컨설턴트'로 뽑기도 했다. 그는 세상을 인구통계학으로 분석한다. 경제도 인구로 본다. 일본이 저 꼴이 된 것, 미국이 금융위기를 맞은 원인이 다 인구구조의 변화에 있다는 것이다. 머잖아 중국 버블이 터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강제적인 한 자녀 정책에서 찾는다.

덴트가 한국에 대해 무서운 말을 했다. 한국은 일본을 정확히 22년 후행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의 호황과 불황, 부동산, 산업화 주기는 일본을 22년 뒤처져 따라가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그래왔다." 이어서 말한다. "한국은 2018년 이후 인구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마지막 선진국이 될 것이다."('2018 인구절벽이 온다')

무슨 근거로 22년, 2018년을 말하는가. 덴트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에서 출산인구가 가장 많았던 해는 1949년이다. 이때 태어난 사람들이 47세가 되던 해, 곧 1996년에 일본의 소비 흐름은 최고조에 달했다. 47세는 가장(家長)의 소비성향이 가장 높을 때다. 한국에서 출산인구가 가장 많았던 해는 1971년이다. 일본보다 22년 늦다. 가장의 나이 47세를 더하면 바로 2018년이다.

덴트의 주장은 단순 명쾌하다. 인구가 많으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경기가 살아난다. 거꾸로 인구가 적으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경기가 죽는다. 반론이 있을 수 없다. 덴트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에 한사코 반대한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봤자 결국 부채폭탄으로 더 큰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 세상에서 가장 늙은 나라인 일본은 2020년 이후 2차 인구절벽을 맞아 굴러떨어지게 된다. 아베 총리가 아무리 용을 써봤자 저출산·고령화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덴트의 예언이 들어맞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국제유가가 뚝 떨어졌는데도 소비는 당최 살아날 기미가 없다. 기준금리 인하, 재정지출 확대도 그때뿐이다. 소비자물가는 담뱃값을 빼면 사실상 마이너스다. 덴트는 "한국의 소비 추이는 오는 2020년 이후 수십년간 내려가기만 할 것"으로 본다. 한국판 '잃어버린 20년'의 전주곡처럼 들린다.

덴트는 정통 이코노미스트가 아니다. 그의 인구결정론적 예측이 다 맞을 거란 보장도 없다. 긴축론자인 덴트는 양적완화가 조장한 버블이 조만간 터질 걸로 내다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들으면 뒤로 자빠질 일이다. 케인지언인 크루그먼은 더 강력한 부양책을 촉구해 왔다. 며칠 전 내로라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이 즐비한 국제통화기금(IMF)도 과도한 재정긴축이 경제에 해롭다는 보고서를 냈다. 묘한 건 실물경제에 밝은 덴트의 주장이 더 피부에 와닿는다는 것이다. 사실 금융위기 때 죽을 쑨 경제학자들이 덴트보다 우월할 거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해법은 뭔가. 덴트는 이민을 제시한다. 이달 초 한국을 찾은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이 개방형 유럽식과 폐쇄형 일본식을 절충한 선별적 이민제도 도입을 권고한 것과 일치한다. 하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 이민 역시 단기처방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론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메르스 때문에 주말 거리가 텅 비었다. 행사도 줄줄이 취소다. 1년 전 세월호 참사와 닮은꼴이다. 메르스를 퇴치하면 소비가 살아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소비 부진은 세월호·메르스 때문이 아니다. 더 크고 깊은 원인이 있다.
세월호·메르스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이다. 일하는 사람보다 노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 이게 고령화의 저주다. 한국 경제는 지금 인구 낭떠러지 끝에 서 있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