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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경영권 방어 '박영선法'을 기대한다

외촉법 개정안 대표발의 창에 맞설 방패 쥐여줘야

뜻밖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이 대기업의 '백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대기업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박 의원이 지난 3일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사유에 '대한민국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현저히 저해하는 경우'를 추가했다. 핵심 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있을 경우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들이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박 의원은 사사건건 삼성과 각을 세웠다. 지난 2월엔 이른바 김학수법(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부의 대물림을 위해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막대한 이익을 누리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달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극성을 부릴 땐 "삼성생명공익재단이 100% 소유한 삼성서울병원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의 태도 변화는 역설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수단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준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자본시장은 문을 활짝 열었다. 간판급 기업들과 시중은행들의 외국인 지분율은 절반을 넘나든다. 외국계 헤지펀드나 기업사냥꾼들은 틈만 나면 '창'으로 경영권을 위협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엔 '방패'가 없다. 삼성물산에 대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집요한 공격은 또 하나의 불공평한 사례일 뿐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강자의 논리다. 자기 이익과 맞을 땐 스탠더드를 고집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가차없이 뭉갠다. 지난 2005년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미국 에너지업체 유노칼을 인수하려 하자 미 의회가 들고일어났다. 결국 매각 협상은 무산됐다. 일본도 "경제의 원활한 운영에 현저한 악영향을 끼칠 경우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게 박 의원 측의 설명이다.

삼성물산·엘리엇 싸움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지난 3일(현지시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ISS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베스타 캐피털 파트너스(Vestar Capital Partners)의 소유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엘리엇은 1심에서 기각된 가처분 신청을 항고하는 한편 삼성SDI와 삼성화재 지분도 약 1%씩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는 삼성정밀화학 지분 5.021%를 보유했다고 3일 공시했다.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파상 공세를 펴는 형국이다. 오는 17일 주총 결과는 예측 불허다.

박영선 의원에게 당부한다. 이왕 총대를 멨으니 제대로 된 경영권 방어책을 마련해주기 바란다. 상대는 창을 다루는 데 능수능란한 전문가다.
국내 기업에도 최소한의 방패를 쥐여줘야 공평하다. 우리는 지난 2000년대 중반 적대적 M&A 러시에도 불구하고 외양간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같은 잘못을 또 저질러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