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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시험대 오른 최경환 리더십

G2 리스크에 北 리스크 겹쳐
내년 총선 출마 저울질은 사치 업적 쌓을 기회를 놓치지 마라

[곽인찬 칼럼] 시험대 오른 최경환 리더십

작년 여름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부총리를 교체했을 때 반가웠다. 최경환 부총리는 바로 직전까지 집권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관계.정계에 두루 발이 넓다. 게다가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다. 한마디로 이 정권의 실세다. 난세엔 이런 인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속으로 박수를 쳤다.

열심히 응원도 했다. 작년 6월엔 '구원투수 최경환'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이왕 부총리직을 부활했으면 진작에 이런 인물을 앉혔어야 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박근혜정부에선 경제수장이 2명으로 그치길 바란다"고도 했다. 또 다른 칼럼('최경환의 뚝심')에선 "초이노믹스를 한 번 화끈하게 밀어주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일본에 아베노믹스가 있다면 한국엔 초이노믹스가 있다고 내세우고 싶었다.

1년 남짓 세월이 흐른 지금 최 부총리에 대한 애착이 북극 빙하처럼 허물어지기 직전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최 부총리는 지난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0%선에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귀를 의심했다. 40%라고?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나라 곳간의 열쇠를 쥔 경제수장이 국가채무 비율 40%를 언급한 것은 최 부총리가 처음인 듯하다. 그것도 아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여기서 정치인 최경환을 본다.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정부에 새해예산을 넉넉히 짜줄 것을 당부했다. 몇 년째 세수가 펑크나는 줄 뻔히 알면서 참 뻔뻔한 주문이다. 놀라운 건 최 부총리의 맞장구다. 예산이 모자랄 때 정치인들은 흔히 국채에 의존한다. 세금을 올리는 정공법은 정치생명을 건 도박이다. 반면 국채는 당장 피해 보는 이가 없다. 그냥 수조원, 수십조원어치 찍어서 민간에 팔면 된다.

선거가 닥치자 최경환의 정치인 본능이 작동했다. 연초 고강도 재정개혁 약속은 빈말이 됐다. 그러잖아도 현 정부 아래서 국가채무 비율은 야금야금 높아져 GDP 대비 37%선을 넘어섰다. 40%에 육박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래선 안 된다. 정부.여당은 틈만 나면 4대 구조개혁으로 나라를 뜯어고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국가재정은 이토록 쉽게 망가뜨릴 생각을 하나. 국채는 젊은이들한테도 못할 짓이다. 결국 빚을 갚는 건 미래세대의 몫이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을 개혁해 청년세대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말도 위선에 불과하다.

영혼이 있는 관료라면 최 부총리는 당당하게 대통령에게 증세를 건의해야 한다. KDI는 최근 '재정건전성의 평가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비과세.감면 축소, 사회보장 기여금 확대, 소득세 및 소비세 인상을 순차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증세가 청와대 벽에 가로막히면 형편에 맞게 나라살림을 짜는 게 순리다. 여당의 예산 증액 요구에 맞장구를 치는 건 경제팀장이 할 일이 아니다.

얼마전 전직 고위관료를 만나 최 부총리의 총선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최 부총리는 지금 자신의 업적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부총리로 업적을 좀 더 쌓은 뒤 총선에 출마할 거란 얘기다. 상황은 꼬여만 간다. 수출.소비.성장률이 저조한 가운데 중국(위안화).미국(금리인상) 리스크에 북한 리스크까지 겹쳤다. 상하이 증시는 연일 급락세다. 신흥국에서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는 속도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이야말로 최 부총리가 업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최경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랐다.


1년여 전 최 부총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기득권의 함정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도 최 부총리에게 잔뜩 기대를 걸고 힘껏 응원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