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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임금피크제만 하고 말건가

임금체계 개편 등 과제 산적.. 노사정의 갈등 깊어지는데 정부는 "빨리 타협" 채근만

[이재훈 칼럼] 임금피크제만 하고 말건가

한국노총의 복귀로 4개월 만에 재가동된 노사정위원회가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노사정의 기싸움이 워낙 팽팽하다. 노동개혁에 대한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지난달 31일 처음으로 열린 노사정 간사회의는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도입 문제로 격돌했다. 한노총은 정부가 공기업에 임금피크제를 강요한다며 반격에 나섰다. 이런 문제로 새삼 줄다리기를 재개한다면 대타협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여당은 연내 노동개혁 관련 입법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으로 합의를 재촉하고 있다.

지난 4월 한노총이 대타협 결렬 선언을 할 때까지 노사정은 7개월간의 협상 끝에 노동개혁의 쟁점 사항에 대해 상당부분 이견을 좁혔다. 임금피크제도 노사 자율로 시행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노동계의 반대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던 사안이다. 한노총은 심지어 노동개혁의 핵심과제인 '직무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자세였다. 다만 저(低)성과자, 근무불량자에 대한 일반해고 지침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 때 근로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문제에 대해 한노총이 극구 반대해 노사정 대화가 결렬됐을 뿐이다. 두 의제는 이번에도 중장기 논의과제로 돌려질 전망이다.

임금피크제가 노동개혁의 핵심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여당이 청년고용 문제를 당면 현안으로 부각시키면서 임금피크제를 대안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의 당위성을 설득하기 위해 '임금피크제=청년 일자리'의 프레임을 내걸었다. 그러나 임금피크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 신규채용을 꺼리는 '고용절벽'이 나타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임금피크제는 고용절벽을 완화하는 보완책일 뿐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개인적으로 임금피크제에 찬성하지만 그것이 바로 고용 확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동개혁의 핵심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정년연장이니 임금피크제니 하는 것은 10%의 노동상류층인 대기업, 정규직에 해당되는 얘기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게는 남의 일이다. 노동시장 유연성과 일자리 확대에 관련된 의제가 이들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와 함께 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및 파견 확대 등이 그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30~40년 전 연공서열제, 호봉승급제 등 임금체계의 불공정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개된 노사정위원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의제들을 다뤄야 한다. 그런데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최근 "9월 10일까지 노동개혁 타협안이 나오지 않으면 노동개혁 관련 정부예산은 낮은 수준으로 편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업급여 인상 등에 필요한 예산을 반영하지 않겠다며 노동계를 압박한 셈이다. 불과 열흘 안에 무슨 수로 복잡미묘한 현안들에 타협하란 말인가. 결국 임금피크제 등 노사정이 과거에 이견을 좁혔던 의제들을 중심으로 적당히 합의하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는 협상의 판을 깰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사용자 측인 경제5단체도 노동개혁이 공무원연금 개혁처럼 '맹탕'이 될까봐 걱정됐던 모양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완화를 법률로 정하고 직무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노동개혁에도 골든타임은 있다. 그러나 노사정이 다뤄야 할 현안의 무게가 간단치 않다. 정부.여당이 개혁을 연내 마무리하겠다는 목표에 너무 집착하면 졸속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고 나면 개혁의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기약없게 된다. 그럴 거면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이란 어려운 개혁 방법을 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임금피크제를 관철한다고 노동개혁이 완수되는 게 아니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