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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틀을 바꾸자] (1) 아이디어 있어도 펀딩은 별따기. 싹 꺾이는 제2의 잡스들

(1) 창업 트라이앵글의 척박한 현주소 1. 협소한 인재풀
4개 유형으로 본 창업 딜레마
대기업 출신 그나마 희망적 영업·판매 역량 부족은 한계
교수 등 학내벤처 가장 유리 연구성과 적극 사업화 해야
대학 창업 동아리 주먹구구 수익모델 약해 투자자 꺼려
취업 포기 후 창업에 나서도 대부분 치킨집 등 자영업만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틀을 바꾸자] (1) 아이디어 있어도 펀딩은 별따기. 싹 꺾이는 제2의 잡스들


제2의 벤처신화를 향한 예비창업가들의 출사표가 잇따르고 있다.

사업 성공과 대박의 꿈을 품고 창업에 도전해 성공한 사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지만 사업을 접고 빚더미에 앉은 실패 사례는 잊혀지고 만다. 창업생태계인 창업아이디어 단계와 투자단계 및 자금회수 단계 가운데 첫단추에 해당하는 예비창업단계부터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구조적 모순이 깔려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소위 스타트업 혁명군단으로 일컬어지는 국내 창업인재풀은 대학생 창업동아리와 대기업 직원, 교수 및 전문가집단, 실망실업자군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네 집단의 속을 들여다보면 '속빈 강정'이라는 암담한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대학생 창업열정, 현실 앞에 와르르

대학생 창업동아리 출신의 예비 기업가들의 벤치마킹 모델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20대에 창업을 했으나 명문대를 중퇴했다는 점이다. 물론 대학 시절 아이디어를 발굴해 졸업 이후 성공한 글로벌 창업가도 여럿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시행착오라는 죽음의 계곡을 거쳐 성공반열에 올랐다. 그나마 미국과 유럽에서 성공한 사례들은 금융과 사업모델이 결합된 창업생태계가 원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 창업동아리에 대한 기대감과 환상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효상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실리콘밸리에 미국의 유수대학 출신 예비창업자들이 몰리고 엔젤투자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상황과 우리나라 현실을 비교하며 착각하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미국 창업예비자들은 사업아이디어뿐만 아니라 본인이 기업공개 이후 어떻게 지분을 정리해 투자자와 수익을 나눌 것인가에 대한 브리핑을 아예 시작 초부터 머릿속에 꿰차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대학 창업동아리에서 내놓는 아이디어 수준의 문제다. 참신한 아이템이어도 실제 사업모델로 수익을 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벤처캐피털(VC)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기술력이 우수하고, 기존에 나오지 않은 아이디어에 눈길이 가는 게 당연하다"면서 "하지만 요즘 창업경진대회나 핀테크 수상자들의 창업사례를 보면 대부분 성공한 사례에서 파생된 애플리케이션 개발이나 이와 관련된 서비스 위주로 가벼운 창업에 열의를 보이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창업 아이템을 확보한 뒤 본격 창업전선에 뛰어들어도 자금조달이라는 큰 벽을 넘어야 한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두 차례 창업을 시도했던 대학생 배모씨(28)는 "국내에선 청년 창업을 위한 펀딩이 거의 전무하다"며 "정부보조금으로 사업을 이어가다가 외부투자를 유치하는 단계에서 (정부)지원이 끊기면 소규모 사업자에게는 타격이 크다. 투자유치에 실패한 뒤 대출을 받아 사업을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아 시장 출시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부터 3년간 '에이트빈즈'를 운영했던 김승덕씨(30) 역시 "어느 회사 출신, 어떤 서비스 개발 경험 등 타이틀이 없으면 투자자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학생 신분의 벤처가를 패기 있다고 치켜세우지만 정작 투자는 꺼린다"고 말했다. 김씨는 미래창조과학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과정을 거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를 차렸다. 3년간 꾸준한 수익을 냈지만 사업다각화를 앞두고 투자유치에 실패하면서 접어야 했다.

창업동아리에서 수익을 내는 진짜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틈새를 버티기 쉽지 않다는 게 창업 경험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올 초 모바일 앱을 출시한 한 창업동아리 대표 이모씨(26.여) 역시 각종 지원이 끊기는 내년이 걱정된다고 전했다. 이씨는 "창업동아리가 기업으로 전환되는 순간 동아리 차원에서의 지원도, 벤처기업으로서의 투자도 받기 쉽지 않은 중간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때 자금조달을 해내는 게 핵심"이라며 "내년 4월 중소기업청의 이공계 창업꿈나무 지원이 끊기는데 그때까지 탄탄한 사업계획 등을 기반으로 투자를 끌어올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학생이 학업에 정진하지 않고 돈벌이에 급급하다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도 대학생 창업의지를 꺾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3년 다닌 외국계 대기업을 나와 창업을 준비 중인 박모씨(31)는 "자금조달이나 영업, 마케팅도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창업에 나서기로 결정하는 게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틀을 바꾸자] (1) 아이디어 있어도 펀딩은 별따기. 싹 꺾이는 제2의 잡스들


■생계형 창업 위주 후진국 행태

우리나라 창업시장에 대한 착시현상은 바로 '실망실업군'에서 극에 달하고 있다.

청년 실업이 심화되면서 취업을 포기한 졸업생들이 창업전선에 뛰어든 것을 비롯해 직장에 근무하다가 명예퇴직한 실업자들이 창업전선에 줄을 섰다. 외형적으로 보면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창업혁명군을 보유한 듯 보이지만 실망실업군이 잉태한 본질적인 기업가정신 부재 탓에 실패 확률도 높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윤상호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창업자 수는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굉장히 많은데 치킨집을 오픈하는 자영업자도 창업 숫자에 포함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영세자영업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나마 실직 상태에서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개발해 재기에 성공한 기업가들도 본격적인 생존게임에서 고군분투하는 현실에 직면하는 게 대다수다.

한 핀테크 업체 공동대표인 20대 이모씨는 자신을 전직 청년실업자라고 칭했다. 그는 2년 전 취업이 좌절된 이후 친구와 함께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금융권을 중심으로 뜨거워진 핀테크 열풍에 생계형 창업가인 이씨는 1년 째 해당 스타트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속내다. 이씨는 "어마어마한 자금력에 최신 경영기법들, 그리고 참신한 아이디어까지 중무장한 기업 출신 창업가와 학생 출신의 스타트업은 출발 지점부터 100m 넘게 차이가 나 있다"면서 창업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 그나마 실업에서 재기에 나선 예비 창업가들마저도 미래 유망기술인 의료나 바이오, 로봇자동차, 반도체 및 소재부품보단 상대적으로 개발기간이나 투입비용 등이 적은 영상콘텐츠 서비스 분야에 몰려 있는 점도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대기업 출신, 기술유출·영업력서 한계

그나마 대기업 근무경력이 있는 창업가의 생존 확률은 비교적 높다.

LG전자에서 클라우드솔루션 개발자로 근무하다 2년 전 스타트업을 설립한 이선웅 클라우다이크 대표도 대기업 근무경력이 창업과정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자기 사업을 하려면 역량과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며 "돌이켜보면 대기업 재직기간이 이런 과정을 자연스럽게 트레이닝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대기업 출신 창업자들로 구성된 스타트업들의 실적이 그렇지 않은 업체들보다 더 좋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미국 엔젤투자사 퍼스트라운드가 지난 10년 동안 자신들이 직접 투자한 스타트업 300곳, 창업가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애플, 구글 등 대기업 출신 멤버가 속한 창업팀의 성과가 그렇지 않은 팀에 비해 160% 높게 나왔다. 또 초기투자 시 기업가치 산정에도 다른 스타트업에 비해 50% 이상 높게 책정됐다.

한국 상황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국의 대표적인 '벤처신화'라고 할 수 있는 네이버는 잘 알려져 있듯 삼성SDS가 지난 1997년 도입한 사내 벤처제도를 통해 탄생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만든 주인공인 김범수 현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역시 NHN 대표이사를 지닌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그 역시 삼성SDS 입사를 시작으로 벤처와 인연을 맺게 됐다.

투자자들도 대기업 출신 스타트업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했다. 대한민국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의 개척자로 알려진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창업 아이템은 사업과정에서 수정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즉, 대응 능력이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다는 얘기"라며 "투자자 입장에선 대기업이라는 검증단계를 거친 쪽에 돈을 주는 것이 투자 성공확률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사내 창업지원프로그램을 통해 2개월 전 스타트업을 시작한 최현철 이놈들연구소 대표도 대기업 출신이라는 점이 투자금 유치에 유리했다고 털어놨다. 최 대표는 "공식적인 검증절차를 거쳤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대기업 출신을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기업 출신 스타트업들도 현실이라는 높은 벽에서 좌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창업 아이템을 상품화하고 이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무수한 난관이 이들 앞에 가로 놓여 있다. 삼성전자 연구원에서 1년 전 창업을 선택한 이예한 뷰노 대표는 "창업 멤버들이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이다 보니 투자를 거쳐 제품 개발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영업.판매 단계에서는 경험 부족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LG전자 클라우드솔루션 개발자로 근무하다가 2년 전 창업한 이선웅 클라우다이크 대표는 "창업과정에서 제품 및 기술 개발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현실에선 판로개척이 더욱 힘들다. 정부 정책이 창업에만 너무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에서 퇴사한 뒤 자기 사업을 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바로 기술유출 문제 탓이다. 이전 직장에서 연구하던 아이디어를 차별화해 특허침해나 기술유출 문제를 피해간다고 해도 기존 직장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창업과정도 무산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인큐베이팅을 해 사내 분사 형식으로 성공한 사례는 있으나 본인이 직접 창업해 대박을 터트리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교수 등 전문가, 성공사례는 극소수

대학교수들을 주축으로 학내 벤처로 설립된 스타트업은 가장 기대되는 창업성공 인재풀로 꼽힌다. 문제는 성공사례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현재 대학교수 출신이 자신의 연구분야의 결과물을 토대로 학내 벤처를 설립한 사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기업은 바이로메드다. 지난 1996년 서울대학교 최초 학내 벤처로 설립된 이 회사는 생명과학부 김선영 교수가 설립했다. 유전자 기반 바이오 의약품과 천연물 신약 개발을 목표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바이로메드는 앞서 2005년 코스닥시장 상장에 성공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서정선 교수가 설립한 마크로젠 역시 바이로메드와 비슷한 사례다. 지난 1997년 서울대 의대 유전자이식연구소에서 학내 벤처로 출발한 마크로젠은 출발한지 3년 만인 2000년 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인간게놈(유전자분석) 프로젝트에 관심이 집중되던 당시 유전자 연구 역량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하지만 바이오업종을 제외하면 현재 대학교수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스타트업에 나선 사례는 찾기 어렵다.

다만 자신의 연구분야와는 별개로 창업에 나선 대학교수는 있다. 상장 초읽기에 돌입한 모바일 게임업체 네시삼심삼분(4:33)의 권준모 이사회 의장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경희대 교육심리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던 권 의장은 지난 2000년 교내 창업경진대회 심사위원을 맡게 되면서 스타트업에 나서게 된 이례적인 사례다. 경진대회 당시 영문학과 학생이던 소태환 네시삼십삼분 공동대표를 만나, 제자들과 함께 창업한 게임회사 인텔리젼트가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대학교수 등 전문가 집단이 본인의 연구분야에서의 성과를 토대로 한 창의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에 나설 경우 적지 않은 시너지를 낼 수 있어 성공확률도 높고, 대학교수의 경우 겸직이 허용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리스크도 적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병용 김용훈 고민서 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