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누적원산지' 기준이 자칫 한국내 산업공동화를 초래 할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TPP 회원국들 간 무역거래에서 관세를 면제 받기 위해서는 품목별로 일정 비율 이상 원재료를 역내조달(회원국들 간에 조달)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섬유업체 등이 TPP 가입 12개국 기업들로 부터 외면받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 기반을 TPP 가입국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재홍 코트라 사장은 7일 한국이 빠진채로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TPP에 못들어가더라도 관세는 크게 문제되지 않으며, 한국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은 누적 원산지 기준"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날 한일경제교류대전 참가차 일본 도쿄를 방문한 자리에서 "TPP 12개국 중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는 일본과 멕시코 두 곳 뿐이기 때문에 관세가 수출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가장 큰 영향은 누적원산지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누적원산지, 무엇이 문제인가
TPP 가입 12개국은 서로 제품을 수출할때 관세를 면제 받는다. 그러나 관세면제를 위해서는 생산한 제품의 원재료중 일정 비율 이상을 역내(TPP 체결국)안에서 조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할때 TPP 조약에 따라 관세를 면제 받기 위해서는 차 한대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부품 55% 이상을 TPP 가입국 안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일본이 차를 만들면서 TPP 협정에서 정한 누적원산지 비율을 넘는 수준의 부품을 한국에서 조달했다면 이 자동차는 협정국에 수출할때 관세를 면제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TPP 가입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6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TPP 합의문 요약본에 따르면 12개국은 이런 내용의 누적원산지 기준을 일괄적용키로 했다. 누적원산지 적용을 위한 원재료 조달 비율은 품목별로 모두 다르게 책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PP 미가입이 산업공동화를 불러 올수 있다는 우려는 이런 이유에서다. TPP 가입국가들이 관세를 면제 받기 위해 제품의 원재료를 역내에서만 조달할 경우 우리나라의 원재료 수출기업들은 졸지에 시장을 잃게 된다. 이 때문에 TPP 가입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기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국내 생산기반의 공동화를 불러 올수 있다는 얘기다.
■산업공동화, 아직은 기우
무역업계 전문가들은 TPP 가입국으로 생산기반이 이전하는 산업공동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당장에 현실화 될수 있는 논리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가격 요인이 가장 중요한 품목이라면 관세면제를 위해 원재료 조달국을 TPP 역내로 바꿀수 있겠지만 기술적 요인이 중요한 경우에는 관세를 물더라도 조달국가를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TPP에는 중국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전세계 제조업체들은 중국내 부품 조달 비율이 높은 상황이다.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섬유 업종의 경우 이미 우리나라 의류 생산업체들도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TPP 타결로 한국에 남아 있던 원재료 수출업체들까지 추가로 이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면 전자나 자동차등 부품의 기술적 수준이 중요한 경우 TPP 가입국들이 역내에서 이를 모두 조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전자제품들은 현재도 관세가 없기 때문에 TPP 가입국들도 원재료의 역내조달에 크게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이에 대해 코트라 상급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도 누적원산지가 TPP에서 상당히 중요하지만 모든 업종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평가 했다. 예컨대 자동차를 만들 때 수천개의 부품이 들어가는데 누적원산지가 영향을 주려면 이 가운데 수백개, 수십개 원산지가 모두 증명돼야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업계와 함께 분석을 해보면 누적원산지 규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게 정확한 분석"이라고 밝혔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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