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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금융개혁? 글쎄올시다

보신주의 질타, 노조 압박은 개혁의 본질과 거리가 멀어
은산분리 손질 안하면 불가능

[곽인찬 칼럼] 금융개혁? 글쎄올시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스마트폰.TV를 파는 건 사실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애플한테 전혀 꿀리지 않는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차를 파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현대차와 경쟁하는 기업들을 보라.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벤츠, BMW, 폭스바겐, 도요타, 닛산, 혼다…. 그야말로 쟁쟁한 기업들이다. 외국에서 삼성전자.현대차 로고를 보면 괜히 뿌듯해진다. 안에선 욕을 먹지만 그래도 밖에선 자랑스러운 우리 기업들이니까.

그런데 금융은 왜 이 모양일까. 왜 세상에 내놓을 만한 토종 금융사는 한 곳도 없는 걸까. 여러 사람이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와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금융의 삼성전자? 참 꿈같은 일이다. 올봄 홍콩에 갔을 때 그 실상을 눈으로 봤다. 한국에선 손꼽히는 시중은행이지만 홍콩 금융가에선 신흥국의 이름 없는 은행에 불과하다. 사무실도 고층빌딩 한쪽 귀퉁이에 처박혀 있을 뿐이다. 그러니 국제금융의 심장인 뉴욕 월스트리트나 런던 시티에선 어떻겠는가. 우리나라 은행이 국제 무대에서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대접을 받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쯤에서 화제를 박근혜정부의 금융개혁으로 돌려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현 정부의 금융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애초 개혁의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준을 잘해도 엉뚱한 방향으로 쏘면 헛방일 수밖에 없다.

난 이 정부가 산업은행 민영화를 포기할 때 금융개혁은 글렀다고 봤다. 이전 이명박정부는 산업은행을 국가대표급 투자은행(IB)으로 키우려 했다. 우리도 골드만삭스 같은 금융사를 갖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박근혜정부가 이 계획을 확 뒤집었다. 이름만 바꿨을 뿐(한나라당→새누리당) 뿌리는 같은 정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우리에겐 여전히 세상에 내놓을 만한 투자은행이 없다. 대형 인수합병(M&A) 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외국계 IB의 독무대다.

우리은행은 민영화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아리송하다. 여기엔 은산분리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 은산분리는 산업자본, 특히 재벌이 은행을 소유할 수 없도록 만든 룰(은행법)이다. 우리은행을 차지하려면 조 단위 자금이 있어야 한다. 국내에 이런 돈을 쌓아둔 곳은 대기업밖에 없다. 그런데 대기업은 아예 제쳐놓고 판을 벌리니까 당최 흥행이 안 된다. 그리곤 기껏 중동 국부펀드를 기웃거리고 있다. 중동 국부펀드는 은행 주인으로 괜찮고 국내 산업자본은 안 된다? 박 대통령도, 최경환 부총리도,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은산분리의 덫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다.

인터넷전문은행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나 부총리는 인터넷은행을 금융개혁의 상징인 양 말하지만 여기도 은산분리의 벽이 가로막고 있다. 인터넷은행은 정보통신기술(ICT) 업체가 주도해야 한다. 그래야 혁신이 샘처럼 솟아난다. 그런데 지금은 구조적으로 은행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ICT 업체, 곧 산업자본은 재벌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은행 지분을 4% 이상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적으론 10%까지 가질 수 있지만 4% 초과 지분은 의결권이 없다. 있으나 마나 한 지분이란 얘기다. 금융위는 올 정기국회에서 은행법을 고쳐 인터넷은행에 한해 4%를 50%로 고치겠다고 하지만 야당은 결사반대다. 국회선진화법을 고려하면 은행법 개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왜 금융개혁인가. 콕 집어서 말하면 우리도 세계 무대에서 떵떵거리는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헤지펀드를 갖고 싶어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은행의 보신주의를 질타하거나 금융노조를 압박하는 건 개혁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산은을 '부실기업 처리센터'로 처박아 두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은산분리 규제도 손질해야 한다.
지금은 재벌이 밉다고 금융산업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 꼴이다. 우간다 이야기는 그만하자. 그렇게 된 데는 관치를 일삼는 정부 책임이 크다. 현 정부가 금융개혁에 성공할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과 비슷하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