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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우리은행 밑지고 팔자

美, GM 공적자금 손절매 "일자리 유지했으니 됐다"..본전 잊고 조기매각 힘써야

[곽인찬 칼럼] 우리은행 밑지고 팔자

찰스 윌슨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래서 미국 국방장관(1953~1957년)을 지냈다. 장관이 되기 전 그는 제너럴모터스(GM)의 최고경영자(CEO)였다. 상원 인사청문회는 까칠했다. 의원들은 국방장관 후보자 윌슨이 소유한 GM 주식을 문제 삼았다. 한 의원이 "국방장관으로서 GM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윌슨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좋은 것이 GM에도 좋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도 좋다"는 말이 나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GM의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GM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오바마는 공적자금인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통해 495억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했다. 우리 돈 약 57조원이다. 미국판 대마불사다.

우리와 다른 점은 공적자금 회수 속도다. 오바마 행정부는 유동성을 지원하는 대신 GM 지분 60.8%를 확보했다. 졸지에 '제너럴 모터스'는 '거번먼트 모터스'가 됐다. GM은 자구책으로 허머.폰티악.새턴 공장 문을 닫고 사브는 외국 업체에 팔아치웠다. 공적자금과 자구책 덕에 회사는 금세 흑자로 돌아섰다. 2010년엔 주식을 재상장했다. 미국 정부는 틈날 때마다 지분을 매각했다. 드디어 2013년 12월 마지막 한 주까지 다 팔았다.

그런데 계산기를 두드리니 수지가 맞질 않았다. 투입한 돈은 495억달러인데 회수한 돈은 390억달러에 그쳤다. 105억달러, 우리 돈 12조원 마이너스다. 우리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게다. 헐값 매각을 주도한 관료는 국회에서 혼쭐이 났을 거고. 하지만 미국은 그냥 슥 지나갔다. 제이컵 루 재무장관이 "100만개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미국 자동차산업의 추락을 막기 위해 구제가 불가피했다"고 말했을 뿐이다. 죽어가는 기업을 살려 일자리를 지켰으니 할 일은 다했다는 식이다. 미국은 본전 찾겠다고 시간을 질질 끄는 대신 빨리 파는 데 주력했다.

한국은 다르다. 우린 공적자금을 한 푼도 남김 없이 다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관료들은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국장처럼 될까봐 벌벌 떤다. 소신을 펴봤자 돌아온 건 법원 소환장뿐이었다. 그 덕에 우리은행.대우조선해양 같은 기업들이 10년 넘게 국영으로 남아 있다.

공적자금 관련법도 까다롭기 짝이 없다. 국가계약법은 경쟁입찰이 원칙이다. 수의계약도 허용은 하지만 엄격한 조건부다. 지난달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4전5기 매각에 나선 우리은행을 수의계약으로 팔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장담컨대 지금 당장 임 위원장이 수의계약으로, 그것도 밑지고 팔면 직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법은 민영화 3원칙을 부칙에 담고 있다.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신속한 민영화, 국내 금융산업 발전이 그것이다. 모순투성이다. 빨리 민영화하라면서 회수는 극대화하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결정적 걸림돌은 은행법이다. 은산분리 규제에 따라 산업자본은 은행의 의결권 지분을 4% 이상 가질 수 없다. 돈 많은 대기업들은 우리은행 주위에 얼씬도 못한다.

공적자금 회수전략을 좀 더 신축적으로 운용할 순 없을까. 야당이 결사반대하는 은산분리는 그냥 두더라도 수의계약 조건은 폭넓게 해석하고, 민영화 3원칙은 신속한 매각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은행권의 한 구조조정 전문가는 "의사들은 수술을 마친 환자에게 운동을 권한다. 다 나을 때까지 병원에 붙잡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도 수술이 끝나면 빨리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마냥 붙잡고 있으면 우리은행.대우조선처럼 뒤죽박죽이 된다.

윤창현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은 지난달 "우리은행을 팔 때 원금 회수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손절매에 나설 수도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GM은 공적자금 투입부터 회수까지 딱 4년 걸렸다. 우린 너무 질질 끌고 있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