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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이세돌 vs. 알파고' 관전포인트

이번은 李가 이기겠지만 재대결 승자는 장담 못해..
인공지능 학습능력 놀라워

[이재훈 칼럼] '이세돌 vs. 알파고' 관전포인트

구글 자회사 '딥 마인드'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 세계 최고수인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내밀자 나는 무릎을 쳤다. 아마추어 고수 수준으로 평가되는 중국계 프로기사를 5전 전승으로 물리친 알파고의 바둑 실력 때문이 아니다. 고작 100만달러(상금) 비용으로 알파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려는 구글의 마케팅 전략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아무렴 컴퓨터가 난타전의 대가 이세돌 9단을 이길 수야 있겠느냐는 선입견도 있었다. 그러나 대결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나는 이 승부의 의미를 간과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번 승부에서는 당연히 이세돌이 압승을 거두리라 본다. 구글은 50대 50 승부로 점쳤지만 실제로 국내 프로기사나 컴퓨터 전문가.과학자들 대다수가 그에게 베팅했다. 이 9단도 "다섯판 중 한판만 져도 나의 패배로 간주될 것"이라며 승리를 자신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이번 승부의 결과가 아니다. 문제는 알파고의 놀라운 학습능력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머지않은 장래'에 양쪽이 다시 대결하게 될 경우 알파고의 승리에 베팅하고 있다. 이 9단도 "다음번 재도전 때 진짜 불꽃을 튀길 것 같은데 이번은 (알파고의 승리가)아니다. 그러나 그 시기가 2년 안에 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대표적인 보드게임인 체스는 이미 오래전에 컴퓨터가 인간을 물리쳤다.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디퍼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인 러시아의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그러나 바둑의 경우 현재까지 나와있는 알고리즘으로는 인간 최고수를 이길 수 없다고 여겨졌다. "체스는 인간이 만든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다. 그러나 바둑은 신이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64칸 안에서 말들이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체스와 361곳을 거의 무제한으로 둘 수 있는 바둑은 경우의 수가 비교가 안된다. 바둑 착수의 경우의 수를 구글은 250의 150제곱이라고 했고 혹자는 361!(팩토리얼)(361×360×259…×1)이라고 했는데 모두 다 틀렸다. 바둑에서 경우의 수는 무한대다.

컴퓨터에게 바둑이 어려운 것은 치밀하고 빠른 연산 외에도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직관과 통찰력, 논리적 추론능력 그리고 창의력까지 요구된다는 점 때문이다. 바둑돌의 효율이나 두터움은 계산이 불가능하다. 이런 것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알파고도 이 부분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알파고는 3000만 수 분량의 프로 실전 기보를 입력해놓고 사람이 1000년간 둘 수 있는 분량의 대국 훈련을 했다. 인간의 정보처리 방식을 모방해 컴퓨터가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게 하는 '딥러닝' 기술 때문이다. 이 9단은 알파고에 대해 "나와는 정선(定先.실력이 뒤지는 사람이 흑으로 먼저 두는 것)과 두 점 사이쯤"이라고 평가했다. 수준 차가 그리 크지 않은 셈이다. 그런 알파고가 대국을 앞두고 쉬지도, 자지도 않고 맹렬히 공부하고 있다.

알파고가 상대는 정말 잘 골랐다. 이세돌이 누구던가. 그는 가드를 내리고 상대를 끌어들여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변칙복서다. 정석에 없는 기발하고 도발적인 수를 즐기며 창의적인 수읽기는 따를 자가 없다. 공부벌레인 알파고도 그와의 대국에서 공부한 적이 없는 신수(新手)들을 거듭 만날 것이다. 결국 알파고의 직관.판단력과 창의력이 제대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이번 대결의 관전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이 9단이 완승해서 인간의 건재함을 과시했으면 하는 것이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져도 이긴 것이나 진배없다. 다섯판을 통해 난해한 이세돌 바둑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대처 방법을 연구한 뒤 빠른 시일에 다시 붙으면 그 결과는 점치기가 어렵다. 체스챔피언 카스파로프도 슈퍼컴퓨터를 이긴 지 불과 1년 만에 재대결해서 패배했다. 이처럼 AI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 진화했고 우리를 극복하는 단계에 다다랐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