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양적완화'가 골치다. 새누리당 총선 공약의 핵심은 '중앙은행 돈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논쟁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면서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양적완화'를 우리나라도 한다니. 우리 경제가 대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야 할 만큼 심각한 것인지. 사람들은 양적완화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총선 이후 사그라들었던 한국판 양적완화를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후 청와대는 한국판 양적완화는 일본, 미국이 시행한 무차별적 돈풀기와 다르다는 '선별적 양적완화론'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한국판 양적완화는 우리가 알던 양적완화와는 다르다'는 설명만으로는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언론도 설명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우리 국민 대다수에게 양적완화란 미국, 일본과 같은 '부자나라'가 제로금리 상태에서 행한 무차별적 돈풀기이다. 경제가 위기일 때 시행하는 특단의 조치인 것이다.
이쯤 되면 '양적완화'라는 작명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한국판 양적완화 설계자였던 강봉균 전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작금의 논쟁에 대해 "예상한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양적완화라는 네이밍이 아니었다면 논쟁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국민적 관심을 받은 공은 인정하지만 양적완화라는 네이밍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안고 있다. '양적완화=돈풀기'라는 인식 때문에 구조조정의 모든 관심이 '재원'에 쏠렸다는 것이다. 아직 구조조정의 밑그림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정부가, 혹은 중앙은행이 얼마나,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궁금해하고 있다.
현재 기업 구조조정 논의에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구조조정의 내용이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등 개별 기업의 자본 상황이 어떻고, 수주 실적은 얼마이고, 고용 상황은 어떤지. 이에 따라 구조조정은 어떤 형태로 해야하는 건지, 속된 말로 죽여야 하는지 살리는 게 맞는지, 어떤 것이 국익에 더 보탬이 되는 길인지 각각의 손익을 면밀히 따져서 판단하는 게 먼저다.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건 우리 경제에 그야말로 '중차대한' 일이다. 구조조정안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중앙은행이 나서라, 몇 조를 내놓으라, 형태는 출자니 자산매입이니 하는 것부터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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