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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관피아 척결하겠다더니

공직자 재취업심사 하나마나 세월호 참사 벌써 잊었나
차라리 관피아방지법 없애라

[염주영 칼럼] 관피아 척결하겠다더니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 달 후인 2014년 5월 눈물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6825t이나 되는 거대한 여객선이 순식간에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 이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관료집단의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을 지목했다. 그리고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척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퇴직 관료들이 유관 분야의 공공기관이나 사기업, 단체 등에 취업해 이권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봤다. 박 대통령은 그 유착 비리의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에 따라 일명 '관피아 방지법(공직자윤리법 개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퇴직 공직자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됐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퇴직일로부터 3년간 취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취업 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공직자가 퇴직 후 유관 분야에 재취업하는 것을 최대한 막자는 취지다. 그런데 그동안의 운영 실적을 보면 최대한 허용하는 쪽으로 잘못 운영되고 있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이 무색할 정도로 관피아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승인 비율은 세월호 사고가 난 2014년에 71%였다. 이 비율이 지난해 88%로 높아졌고, 올 상반기에는 92%까지 치솟았다. 신청만 하면 거의 다 승인해주고 있는 셈이다. 기관별 취업심사 결과를 보면 권력 기관일수록 승인 비율이 높다. 국가정보원 출신은 지난 3년간 20명이 심사를 받았는데 전원 취업승인을 받았다. 검찰 출신은 심사대상자 28명 가운데 27명(96%)이, 금감원 출신은 32명 중 28명(88%)이 각각 취업을 승인받았다. 이 정도면 퇴직 공직자의 유관 분야 재취업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관피아는 퇴직 공직자를 매개체로 한 다단계 비리 구조의 연결고리다. 공직자는 재직 중에 예산, 인허가권 등을 활용해 산하기관에 각종 특혜를 베푼다. 산하기관은 그 공직자가 퇴직하면 자리를 보장해준다. 산하기관에 재취업한 퇴직 공직자는 다시 후배 관료들과의 유대관계를 활용해 해당 기관의 이권을 보호해주는 구조다. 낙하산도 자리와 특혜를 거래한다는 점에서 관피아와 같은 계열이다. 대우조선해양 부실화의 주범 중 하나로 낙하산 인사가 지적됐다. 청와대와 산업은행 등이 권력과 돈줄을 무기로 낙하산을 무더기로 내려보내 대우조선의 경영 부실화를 가속화했다. 정치권이나 상급기관이 예산, 인사, 각종 정책 수립.집행 등의 권한을 이용해 산하기관에 특혜를 베풀고 산하기관은 그 대가로 자리를 내주는 유착비리다.

앞으로 대통령 임기 말이 가까울수록 낙하산 인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올 연말까지 기관장 임기가 끝나는 금융.비금융 공공기관이 50여곳에 달한다. 시중에는 벌써부터 후임 인선을 둘러싸고 관피아와 낙하산 인사 기용설이 파다하다.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인사도 수두룩할 것이다. 4.13총선에서 낙선했거나 낙천한 인사들도 막판 자리 쟁탈전에 나설 게 분명하다. 이번에도 관피아와 낙하산 인사를 되풀이한다면 공공기관의 비효율과 부실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동안 공을 들여온 공공부문 개혁이 물거품이 되게 할 것인가.

박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이런 나쁜 관행과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문성도 없는 권력 주변 인물들이 전리품으로 자리를 꿰차는 악습을 끊어야 할 때가 됐다. 그런 악습의 결과로 우리는 이미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그런 마당에 또다시 관피아.낙하산 인사를 되풀이한다면 구제 불능이다.
박 대통령은 온 국민에게 큰 슬픔과 좌절의 고통을 안겨준 세월호 참사를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임기 1년 반 동안 관피아 척결 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해 보여야 한다. 관피아와 낙하산을 걸러내지 못하면 언제든 제2의 세월호 사태가 다시 찾아올 것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