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이재훈 칼럼] 기업 빼고 6차산업 되겠나

농업 대형화·스마트화가 대세.. 우리 농민은 기업농 극구 반대
정부도 '나 몰라라' 뒷짐만

[이재훈 칼럼] 기업 빼고 6차산업 되겠나

요즘 일본에서 가장 뜨고 있는 신산업은 농업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대기업들이 속속 농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스마트농업이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자동차는 이미 1999년 유리온실 화훼사업을 시작한 이래 공장 폐열을 이용한 파프리카 재배사업을 8년째 영위 중이다. 최근에는 쌀 생산효율을 높이기 위해 '풍작 계획'이라는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개발했다.

히타치, 도시바, 후지쓰, 소프트뱅크 등 정보기술(IT) 대기업들도 식물공장 사업에 진출했다. 일본 3대 은행 중 하나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도 영농법인을 만들어 벼농사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농업분야 국가전략특구로 지정된 니가타시에는 편의점업체인 로손, 구보타, 오릭스 등 대기업들이 진출했다. 기업은 기술과 자본을, 농민은 땅과 인력을 지원하며 상생의 길을 걷는 것이 주목된다.

일본 정부는 농업의 대형화.첨단화.고부가가치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는 2014년 "농업을 되살려 신성장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농지 소유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영세화로 일본 농업의 경쟁력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게다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결정 이후 회원국들은 일본에 쌀, 보리 등 주요 농산물 관세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농업 첨단화와 기업농 육성을 통해 개방의 파고를 넘겠다고 인식을 바꿨다. 이에 따라 일본의 기업농 수는 2010년 175개에서 지난해 2039개로 12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세계는 지금 스마트농업이 대세다. 남한 면적의 절반도 안 되는 네덜란드가 세계 2위의 농업 수출국가가 된 것은 스마트팜을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농가 가구당 경작면적은 74㏊로 한국(0.78㏊)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대형화되어 있다. 중국은 농업 생산과 유통에 ICT를 접목하고, 경영관리.연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농업인'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 농업에서 첨단기술 도입과 대규모 투자는 불가피하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와 동떨어진 갈라파고스다. LG CNS가 새만금에 해외기업과 합작으로 3800억원을 투자해 76㏊ 규모의 스마트팜 단지를 세우겠다고 하자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이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농민 생존권에 대한 위협"이라며 들고 일어섰다. LG 측이 생산될 작물은 전량 수출할 것이며 농민들도 스마트팜 사업에 참여하자고 제안했지만 "못 믿겠다"며 막무가내다. LG는 지금 사업을 접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문제는 농민들이 기업농을 그저 반대만 할 뿐 아무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고령화, 영세화와 경쟁력 약화란 측면에서 한국 농업이 처한 현실은 일본과 다를 바가 없다.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농업 경쟁력 강화에 200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지만 우리 농업은 갈수록 오그라들고 있다. 농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가 채 안 된다. 농민들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지 않고 보조금에나 기대어 살아갈 생각을 한다면 우리 농업에는 미래가 없다.

기업과 농민 간 갈등에 정부가 수수방관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LG 측에 "농민들을 만나 상생방안을 마련한 뒤 사업을 진행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4년 전 토마토 유리온실사업을 추진하다 농민들 반대로 좌절한 동부팜한농 사태 때도 농식품부는 농민들 눈치를 살피며 뒷짐만 지고 있었다.

박근혜정부 내내 농식품부가 주창했던 것이 '농업의 6차산업화'다. 농업을 제조업.서비스업과 결합해 고부가가치 산업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엔 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농식품부가 농민 설득에 나서지 않는 것은 비겁함을 넘어서 자기 모순적 행위다. 김재수 장관 내정자는 이 문제부터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