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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고용부가 진짜 해야 할 일

박원순 시장과 치고받느라 정작 제 눈의 들보는 못 봐
2조 헛돈 청년정책 손봐야

[곽인찬 칼럼] 고용부가 진짜 해야 할 일

더워서 짜증 나겠지만 간곡하게 부탁 드린다. 아래 나열한 정책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읽어주시길. 일·학습병행제, 중소기업 청년취업인턴제, 중소기업 취업연수지원, 강소기업 탐방프로그램, 청년취업아카데미, 대학창조일자리센터 운영, 대학청년고용센터 운영, 취업지원관 사업, 세대 간 상생 고용지원 사업, 해외취업 지원,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능력중심 채용 확산, 일-교육.훈련-자격 연계 고졸인력 양성, 고용디딤돌 프로그램. 수고하셨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청년실업 대책으로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대책들이다.

더 있지만 이 정도에서 그치겠다. 굳이 알고 싶은 분을 위해 국가기간.전략산업 직종 훈련, 취업사관학교 운영 지원도 있다는 정도로만 언급하겠다.

그리고 진짜가 하나 더 있다. 취업성공패키지. 줄여서 취성패라 한다. 고용부 자료를 인용하자면 지난 2009년부터 시행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표적 취업지원프로그램'이다. 취성패는 3종 세트다. 패키지Ⅰ은 기초생활 수급자 등 취약계층이 수혜층이다. 패키지Ⅱ는 실직자나 소득이 시원찮은 중장년층(35~64세)용이다. 그리고 청년 취성패가 있다. 18~34세의 청년들이 대상이다.

청년 취성패는 단계별로 수당 또는 실비를 지급한다. 1단계에선 참여수당(최대 20만원)을 준다. 상담을 받고 개인별 취업활동계획(IAP)를 내는 조건이다. 2단계에선 훈련참여수당(최대 240만원.40만원×6개월)을 준다. 대신 직업훈련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 3단계로 취업알선 실비가 있다. 면접 보러 다닐 때 차비나 식대에 쓰라고 주는 돈이다. 1회 2만원, 최대 3회 6만원까지 준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마지막 단계에 주는 실비가 특히 부족했다고 여긴 모양이다. 얼마 전 그는 3단계 청년들에게 월 20만원씩 3개월, 최대 60만원의 '취업수당'을 주겠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구직자 69%가 면접비용에 부담을 느끼며, 약 30%는 비용 때문에 면접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1~3단계를 착실히 밟은 청년 구직자는 최대 32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원래 있던 취업알선 실비를 없애지 않는다면 326만원으로 늘어난다.

고용부는 신설한 취업수당이 서울시의 청년수당과 닮은꼴이라면 펄쩍 뛴다. 그러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고했다는 상호의무 원칙을 꺼내든다. 구직자가 현금 지원을 받으려면 상응하는 구직활동이나 교육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취업수당은 원칙에 맞지만 박원순표 청년수당은 마구잡이라고 비판한다. 글쎄, 내 눈엔 직접 현찰을 준다는 점에서 오십보 백보다. 되레 나는 현찰에 오만상을 찌푸리는 정부 스스로 진작부터 참여수당.훈련수당을 지급하고 있다는 데 눈살이 찌푸려진다.

정부와 서울시 간 갈등은 자존심 싸움일 뿐이다. 그 통에 우린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저 많은 청년실업 대책을 앞세워 한 해 2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으면 뭣하나. 청년실업률은 10% 안팎의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현찰이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년실업이 줄었느냐 안 줄었느냐다. 안 줄었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통계청이 집계한 청년층(15~29세) 공식실업자는 약 42만명(7월.실업률 9.2%)이다. 청년 일자리 예산 2조1000억원을 이들에게 현찰로 나눠주면 어떨까. 놀라지 마시라, 1인당 무려 500만원꼴이다. 고용부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청년 일자리 정책은 과연 1인당 500만원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가.

고용부가 싸울 상대는 총 예산 90억원 규모의 박원순표 청년수당이 아니다.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행여 저 숱한 정책이 고용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 다른 부처와 일자리 정책을 놓고 기득권 다툼은 없는지도 따져보라. 그런 뒤에 여력이 있다면 그때 가서 박원순 시장과 싸워라. 제 눈의 들보를 외면하는 한 고용부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