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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연말정산 파동에 전기료 해법 있다

'거위털' 발언에 분노 폭발.. 원천징수 선택권 주자 잠잠
산업부 . 한전 교훈 새겨야

[곽인찬 칼럼] 연말정산 파동에 전기료 해법 있다

날씨가 제법 차졌다. 올여름을 달군 전기료 분노도 한풀 꺾인 듯하다. 8월의 열기가 식은 지금이 전기료 해법을 찾기에 적당한 때다. 차분하게 묘안을 궁리해 보자. 박근혜정부의 세법개정안 소동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세법 개편은 두 차례 파란을 겪었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8월에 1차, 2015년 1월에 2차 분노가 터졌다. 1차 땐 소득세를 더 내는 기준을 놓고 불만이 솟구쳤다.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거위털' 발언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성난 민심은 박근혜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뒤에야 가까스로 가라앉았다. 기획재정부는 서둘러 세 부담이 늘어나는 기준선을 연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바뀐 세법을 2014년 소득분에 실제 적용하자 또 한번 난리가 났다. 2015년 초 연말정산 때 돈을 토해내는 사람이 속출했다. '13월의 월급'이 '13월의 폭탄'이 됐다. 결국 새누리당과 정부는 다시 세법을 바꿔 소급적용하기로 했다.

그제서야 정부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몇 가지 똘똘한 대안을 내놨다. 작년 6월 연말정산 원천징수 비율에 선택제를 도입했다. 납세자들은 80.100.120%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효과는 컸다. 올 1월 연말정산은 조용히 지나갔다. 민심을 반영하고 납세자에게 선택권을 주니 불만도 사라졌다. 국세청이 개발한 연말정산 미리보기 서비스도 주효했다. 세법개정 소동은 소통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웠다.

전기료 누진제 논란은 세법개편 소동의 데자뷔다. 처음에 정부는 뻗댔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고위 관료는 '요금폭탄은 과장'이라고 말해 국민의 속을 뒤집었다. 포털 네이버의 관련기사 댓글엔 46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저분 집에서 에어컨 하루 3시간만 트는지 조사해봐요. 애기 있는 집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라는 댓글이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았다.

대통령이 나선 뒤에야 분노가 가라앉은 것도 세법개정안과 닮은꼴이다. 이틀 뒤 박 대통령은 "당과 잘 협의해 조만간 누진제 개선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그날 오후 산업부는 7~9월 한시적으로 전기료를 깎아주는 초고속 대책을 내놨다. 3년 전 기재부가 대통령 지시 이튿날 세법 수정안을 내놓은 기록을 깼다.

산업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한국전력은 몇 년째 꾸준히 흑자를 올리고 있다. 그것도 조(兆)단위다. 3년간(2013~15년) 영업이익을 합치면 총 18조원이 넘는다. 올해 이익은 14조원으로 추정된다. 공기업이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국민의 눈엔 정부와 한전이 소비자를 등친다고 여기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한전 주주 구성을 보자. KDB산업은행이 32.9%로 최대주주이고 기재부가 18.2%, KDB생명보험이 0.03%를 갖고 있다. 셋을 합친 범정부 지분이 51.14%에 이른다. 돈을 벌수록 정부만 부자가 되는 구조다. 한전은 증시에 상장된 시장형 공기업이다. 태생적으로 수익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수익성은 충분히 달성했다. 지금은 공익성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할 때다.

세법개편 파동에서 보듯 정책의 성패는 소통이 좌우한다. 전기는 전 국민이 고객이다. 맞선다고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그보단 소비자에게 요금제 선택권을 주는 식의 슬기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게 낫다. 실시간으로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계량기 사업도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그래야 뒤늦게 폭탄 고지서를 붙들고 부들부들 떠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세법 파동은 '국민과 맞서지 말라'는 교훈을 남겼다. 산업부와 한전 관계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