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강문순 칼럼] 잔칫집 일본, 김칫국 한국

한우물 판 덕에 잇따라 노벨상..실력차 솔직히 인정하고 경직된 연구문화부터 바꿔야

[강문순 칼럼] 잔칫집 일본, 김칫국 한국


일본 열도가 잔칫집 분위기다.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하고 방송국들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특보를 편성했다.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국적 수상자까지 합쳐서 25번째, 과학상은 22번째, 생리의학상은 네 번째다. 오스미 교수는 세포가 손상됐을 때 불필요한 단백질을 분해해 재활용하는 '오토파지'(Autophagy.자가포식) 현상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덕분에 암.치매.파킨슨병 치료가 한걸음 더 나아갔다.

오스미 교수는 50년 한 우물을 팠다. 일본 언론은 '헤소마가리(へそ曲がり) 정신'이라고 했다. 누가 뭐래도 자기 길을 가는 외곬, 고집불통이라는 뜻이다. 오스미는 남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세포 쓰레기통'을 연구했다. 그는 젊은 시절 "과학자 열에 여덟이 단백질 합성을 연구하지만, 나는 단백질이 없어지는 걸 연구한다. 남이랑 똑같은 걸 해선 소용없다"고 했다고 한다.

일본 과학계의 잇따른 개가는 오랜 투자의 산물이다. 120년 전부터 기초과학에 투자해 왔다. 실제 일본은 노벨상이 시작된 1901년부터 후보자가 있었으며, 48년을 기다린 끝에 1949년 첫 과학분야 수상자(유카와 히데키.물리학상)가 나왔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81년 동안 꾸준히 기초과학에 정진한 결과 1949년에야 비로소 노벨상이 나온 셈이다.

그러니 과학기술 역사가 보잘것없는 우리는 부러워할 것도 없다. 격차를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액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2014년 기준 4.29%로 1위다. 2위는 4.11%인 이스라엘, 3위는 3.58%의 일본이다. 물론 금액 규모면에서는 6위로 처진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번 국감에서 지난 5년 동안 한국연구재단이 초빙한 전문인사 가운데 20%가 군.국정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R&D 예산으로 안보장사를 해 온 것이다.

오죽하면 지난 9월 국내 대표 과학자 40명이 기초연구비를 올려달라며 국회에 청원까지 했을까. 열흘 새 이 청원에 동참한 과학자만 1300명이 넘는다. 이들은 19조원이 넘는 정부 연구비 가운데 6% 정도만 기초과학에 주어진다고 비판했다. 기초연구는 누가 정한 대로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연구자가 스스로 만든 창의적 과제에서 성과가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정부 입맛에 맞춰야 연구비가 나온다. 지난 3월 정부가 1조원을 투입해 만들겠다던 '한국형 알파고'가 대표적이다.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프로 기사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첫 승리를 거둔 지 1주일 만에 급조됐다. 포켓몬고가 뜬 이후에는 가상현실을 집어넣었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가 지난 6월 우리나라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내지 못한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기초연구의 장기 투자에 인색하고 토론이 적고 경직된 연구실 문화를 원인으로 꼽았다. 상명하복식의 연구실 문화는 참으로 부끄러운 지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진기술을 모방하는 추종전략으로는 더 이상 생존이 어렵다.
기초과학의 토대를 튼실히 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 그나마 최근 KAIST가 10년 내 상용화되지 않을 '돈 안 되는 연구'에 최장 30년간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한 줄기 희망이다. 이젠 정부와 기업이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기초과학 연구의 토대만 마련해 놓고 멀리서 감시만 하자. 젊은 과학자들이 무한한 창의력으로 맘대로 뛰놀 수 있게.

mskang@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