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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갤노트7 시련은 삼성에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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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갤노트7 시련은 삼성에 '축복'

국가도 기업도 자멸한다. 원숭환(袁崇煥.1584~1630)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명장이다. 만주에서 후금을 일으킨 누르하치도 원숭환 때문에 쩔쩔맸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철옹성 산해관이다. 원숭환은 산해관 길목의 영원성에 진을 쳤다. 1626년 겨울 누르하치가 수십만 팔기군을 앞세워 들이닥쳤다. 원숭환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되레 크게 다친 누르하치가 그해 8월 세상을 뜬다. 그 뒤를 이은 인물이 홍타이지, 곧 청 태종이다.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에 치욕을 안긴 바로 그 인물이다.

홍타이지는 우회전술을 구사한다. 서로를 이간질시키는 반간계(反間計)다. 홍타이지는 포로로 잡힌 명나라 환관 둘을 가둔 채 바로 옆방에서 자신의 부하 둘이 '밀담'을 나누게 했다. "원숭환이 홍타이지와 짜고 베이징을 탈취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곤 포로 둘을 슬쩍 풀어준다. 나는 듯 자금성에 닿은 두 환관은 숭정제에게 엉터리 고자질을 한다. 1630년 원숭환은 임금을 속이고 모반을 꾸민 죄로, 형리들이 살점을 발라내는 잔혹한 형벌 끝에 목숨을 잃는다. 나라를 망치는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기업도 자멸한다. 경영학의 구루 짐 콜린스는 기업의 몰락을 5단계로 나눈다. 1단계는 성공이 부른 자만이다. 통신기기의 원조인 모토로라를 보자. "1995년 모토로라 경영진은 초소형 스타택 휴대폰 단말기 출시를 앞두고 기고만장해 있었다. 문제는 무선통신 시장이 이미 디지털 기술로 이동했는데 스타택은 여전히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기자가 이를 묻자 모토로라의 한 경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4300만명의 아날로그 고객이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자만의 늪에 빠진 모토로라는 구글을 거쳐 중국 레노버의 손에 넘어갔다. 한때 수만명에 이르던 인력은 수백명으로 쪼그라든 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콜린스는 단언한다. "승승장구하느냐 실패하느냐, 오래 지속하느냐 몰락하느냐. 이 모든 것이 주변 환경보다는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 불량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홍채 인식으로 찬사를 받던 바로 그 전화기다. 불이 붙는다고 해서 다른 제품으로 바꿔줬는데 또 불이 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갤노트7 모델은 두 달 만에 단명하는 비운의 폰이 됐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이 혼란을 액땜으로 본다. 더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세게 한방 먹었다고나 할까. 삼성전자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애플과 구글 때문에 삼성전자가 망할 일은 없다.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무엇보다 성공의 자만에 빠지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자만한 경영자는 젠체하기 시작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는 식이다. 혁신을 주도할 경영자는 잘난 체할 여유가 없다. 영어에 '숨겨진 축복'(Disguised Blessing)이란 표현이 있다. 화를 복으로 바꾸는 전화위복(轉禍爲福)과 비슷한 말이다. 화가 복이 될지는 오로지 삼성 손에 달렸다.

경영권 승계를 앞둔 이재용 부회장이 호된 시험을 치르고 있다.
달리 보면 리더로서의 능력을 입증할 좋은 기회다. 콜린스는 "올바른 리더는 가슴속에 활활 타오르는 석탄 덩어리를 품고 있다"고 말한다. 창의적인 충동과 진보를 향한 내적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다. 이 부회장의 가슴은 활활 타오르고 있는가.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