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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칼럼] 부작용이 부작용을 낳는 김영란법

18개월 준비기간 허투루.. 화훼 매출 절반으로 감소
시행착오 줄이는 게 관건

[강문순 칼럼] 부작용이 부작용을 낳는 김영란법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김영란법이 시행 20일을 넘겼다. 하지만 법 규정의 모호성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혼란은 가중되고 공직자 몸 사리기, 소비위축 등 부작용만 부각되고 있다. 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첫 사례가 춘천에서 나왔는데 명확하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춘천경찰서는 지난 18일 춘천지법에 '김영란법 위반 과태료 부과 의뢰' 사건을 접수시켰다. A씨가 법 시행 첫날인 지난달 28일 자신의 고소사건을 맡은 수사관에게 4만5000원 상당의 떡 한 상자를 보냈다. A씨는 "조사 시간을 조정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법 조항대로라면 직무 관련자에게 금품 등을 제공한 것이기에 불법일 확률이 높다. 반면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금품은 예외로 인정하는 조항 때문이다. 사회상규(social rule)란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행위다. 경찰 조사를 마친 뒤 편의를 봐준 고마움의 표시가 사회상규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을까. 카네이션, 캔커피도 마찬가지다.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입법을 주도한 국민권익위원회의 책임이 가장 크다. 김영란법은 시행에 앞서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뒀지만 권익위는 이를 허투루 써버렸다. 법 시행 전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두는 것이 유예기간이다. 올 7월 합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권익위는 무엇을 했을까.

대한민국의 역사는 김영란법 시행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유행이었다. 그만큼 국민 생활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란 예상에서다. 그러나 권익위는 애초에 능력이 없었다. 그러니 혼란을 부채질한다. 권익위 청탁금지제도과의 정식 직원은 9명뿐이다. 파견 인원을 합쳐봐야 16명이다. 그러니 수천건의 질의 가운데 답변율이 20%에도 못 미친다. 자신의 법 해석 권한까지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못한 박근혜 대통령이 "법의 취지가 퇴색되고 부작용만 부각된다"고 질타한 이유다. 결국 총리 산하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것으로 권익위의 역할은 축소됐다.

정부.국회의 이런 무능은 고스란히 서민으로 전가되고 있다.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음식점 매출 감소, 종업원 해고 등 연쇄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조금 더 지나면 빈 상가가 급증할 수도 있다. 화훼업계는 매출 감소폭이 45~50%로 확대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한 통계가 어느 순간부터 나오지 않고 있다. 비씨카드는 이달 초 김영란법 시행 뒤 요식업종 카드 이용패턴 변화를 분석한 보도자료를 내놨다. 법인카드 사용액이 9% 감소했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정부에서 딴죽을 걸고 나섰다고 한다. 정부가 내수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마당에 카드사가 소비위축 내용을 담은 자료를 내 소비심리에 찬물을 끼얹어서 되겠느냐는 얘기다. 잘못을 감추기 위한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영란법 시행 초기 벌어지는 혼선과 논란은 오히려 김영란법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소비심리 위축은 연쇄 부작용을 일으켜 국가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 선의가 정책의 효율성을 보장하지 않는 사례는 숱하게 많다. 어렵게 시행된 법이니만큼 더 큰 대가를 치르기 전에 시행착오를 줄이는 게 관건이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