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등급 판정을 받지 못한 채 숨진 산업재해 근로자의 유족도 장해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진폐증 등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 산재로 질병을 앓다가 등급 판정을 못 받고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들도 적정한 보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3일 진폐증으로 숨진 탄광 근로자의 딸 이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장해급여 부지급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11년 아버지가 진폐증이 원인인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숨지자 공단에 장해급여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이 망인은 진폐 정밀검진을 통해 장해 판정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하자 이씨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장해등급을 받지 않은 근로자에게도 장해급여 청구권이 발생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장해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로 질병에 걸려 치유된 후 장해가 있는 경우에 지급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법원은 장해급여를 받을 권리는 장해등급 결정 이후에야 발생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앞서 1·2심은 "장해등급 결정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상속인이 장해급여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장해등급을 받지 못한 근로자 유족이 장해급여 지급을 청구하면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우선 등급을 결정한 후 급여 지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공단이 결정할 사항은 장해급여의 지급 여부와 내용 뿐만 아니라 장해등급 결정도 포함된다"며 "진폐를 원인으로 한 장해급여 청구를 받은 공단은 요건에 해당하는지와 함께 등급에 해당하는지도 심사해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급여 청구에 앞서 별도로 진폐 판정 또는 장해등급 결정을 받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장해급여 청구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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