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업체 ‘하만’ 인수
커넥티드카 신사업 육성.. 토털솔루션 기업으로 도약
삼성전자가 미국 전장.오디오 '공룡' 업체인 하만(Harman)을 인수하게 된 배경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전격적인 지시가 있었다.
삼성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14일 "이번 인수합병(M&A)는 이 부회장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그 만큼 이 부회장이 전장 산업에 대한 거는 기대가 크고, 향후 삼성의 방향성을 (이 부회장이) 확실하게 제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직접 지시, 사상최대 M&A
협상 과정은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 M&A 담당팀은 이 부회장의 인수 지시를 받고, 이미 몇개월 전부터 하만 측과 여러번 접촉했다. 그 때마다 하만은 삼성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회사는 당초 인수 대금으로 10조원 안팎을 예상했고, 윗선에도 그렇게 보고했었다"면서 "하지만 막상 협상 테이블에서 하만 측이 15조원을 웃도는 금액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9조3385억원의 인수대금 규모는 협상 과정에서 삼성전자 M&A팀의 전략이 승리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만은 오디오 전장사업의 글로벌 선두 기업이다.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 보안, 무선통신을 이용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OTA) 솔루션 등 전방위인 오디오 전장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1995년 독일 베커를 인수한 후 전장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미국, 독일, 중국 등 10개국 19개 거점(전장사업 9개)에서 현재 3만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BMW, 벤츠, 피아트 크라이슬러에 하만의 브랜드인 하만카돈이 탑재됐고 페라리, 도요타, 푸조, 시트로엥에는 또 다른 브랜드 라인인 JBL이 채택됐다. 현대기아차에는 JBL과 렉시콘, 인피니티를 카오디오 브랜드로 적용했고, 쌍용차와 쉐보레에도 프리미엄급 차종에 하만 오디오 브랜드가 적용돼 국내 대중에게도 익숙한 기업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하만그룹은 최근 회계연도 기준 커넥티드카 매출액 31억200만달러(3조6432억원)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매출액 69억1200만달러의 44% 수준이다. 전 세계 오디오 시장점유율 41%로 업계 1위인 하만의 주요 고객사별 매출 비중은 BMW 13%, 피아트 크라이슬러 15%, 폭스바겐 12%, 기타 60% 등이다.
■전장으로 열린 삼성 오디오 '제2막'
삼성전자는 하만그룹 인수를 통해 오디오 전장 시장에서 단박에 1위로 올라서게 됐다. 'M&A를 통한 시장 잠식'이라는 이재용식 경영 화법이 공식화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등 부품 및 모바일, 가전 부문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하만의 전장사업 노하우를 결합해 혁신적인 제품을 보다 빨리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과 하만의 공연장 및 영화관용 음향, 조명기기 사업과의 시너지도 강화할 예정이다.
시장은 삼성전자 전장사업의 추가 M&A 가능성도 예상하고 있다. 이세철 NH증권 애널리스트는 "자회사들이 전장사업을 하는 LG그룹과 달리 삼성은 이 분야 밸류 체인 기업들을 인수하는 방향을 선택했다"며 "(전장 관련 기업의) 추가 인수 합병도 가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과거 오디오 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기억이 있다. '영화 광'으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은 재계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오디오 마니아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TV 음질도 명품 오디오 소리를 따라가야 한다"는 이 회장의 주도로 1995년 일본회사 럭스를 인수하고 이듬해 '엠퍼러'라는 전문가용 오디오 시스템을 시장에 내놨다. 그러나 당시 미성숙한 프리미엄 시장 환경과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1998년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런데 전장사업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리면서 이 부회장이 '아버지의 꿈'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 부회장도 이건희 회장처럼 오디오에 남다른 애착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산업환경 변화와 이 같은 요소들이 맞아 떨어지면서 이번 M&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하만의 주주와 주요 국가 정부기관의 승인을 거쳐 내년 3.4분기까지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만은 인수 이후에도 삼성전자의 자회사로서 현 경영진에 의해 운영될 예정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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