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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칼럼] 정권사업의 운명

서울시 창조예산 전액 삭감
5년마다 전임자 흔적 지우기.. 정권 아닌 국가사업 고민해야

[강문순 칼럼] 정권사업의 운명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가 한창이라고 한다. 지지율 5%로 민심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여름 휴가차 들른 울산 동구 대왕암공원 입구에 세워졌던 '대한민국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대왕암공원 방문'이라는 제목의 안내판 2개가 최근 철거됐다. 관광객들이 안내판의 대통령 사진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는 12월 1일 열리는 창조경제박람회의 이름마저 바꾸자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최순실 사태의 불똥은 박근혜정부의 핵심사업인 창조경제로 튀었다. 서울시는 지난주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예산 20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예산 삭감이 다른 지자체로 확산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혁신센터가 최순실.차은택씨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혁신센터에 대한 불신은 최근 센터장 공모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연내 센터장 임기가 만료되는 부산과 인천, 경북, 충북 혁신센터 중 공모 접수가 진행 중인 충북을 제외하면 나머지 3곳 모두 지원자가 한두 명에 불과하다. 억대 연봉 등 좋은 조건임에도 그렇다. 인천은 2년 전 초대 센터장 모집 당시 14명이 지원했다.

그동안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는 논란이 많았다. 박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린 이한구 전 의원마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추진 과정이 미비한데 홍보에만 집중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창조경제에 대해 아직도 국민 절반 이상이 모른다"며 "전체 그림을 구체화하고 추진체계 정비와 평가.감독 시스템을 재점검하라"고 했다. 지난 9월엔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 "국가 공인 동물원을 만들어준 것"이라며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방식을 비판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지난 정권의 꼬리표가 붙으면 가차없이 용도 폐기된다. 이는 지방자치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자리에는 그 정권의 새 키워드가 자리한다. 그 폐해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지난 20여년 동안 정권별 정책 키워드는 매번 바뀌었다. 김대중정부는 벤처, 이명박정부는 녹색성장, 현 정부는 창조경제로 이어졌다. 박근혜정부 초기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인데 제목과 단어만 녹색성장에서 '창조'로 바꿨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 가능한 정책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임기 안에 성과를 보려는 치적 쌓기일 경우는 더 그렇다. 중요한 건 사회적 합의다. 노무현정부의 혁신도시와 행정중심복합도시 사업이 여러 가지 불편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사회적 공감대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창조경제 정책은 손질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벤처.중소기업 창업 활성화라는 순기능을 외면해선 안 된다. 최순실.차은택이라는 빨간줄이 그어졌지만 취지만큼은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와 함께하는 5년짜리 정책이 갖는 한계는 분명해졌다. 새 대통령이 들어서면 생겼다가 그만두면 사라지는 대통령 프로젝트로는 국가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나라의 미래보다는 정권의 성공을 더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백년대계는커녕 십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정권이 할 일과 국가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 이제는 정권을 이어 지속되고 이념을 넘어 추진될 수 있는 장기 성장플랜을 짤 정치인이 필요하다. 내년부터는 인구절벽이 시작된다.
일할 사람이 줄어들어 경제 활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한달 보름 뒤면 2017년이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