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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유 부총리가 경제대통령이 돼라

경제 걱정하는 지도자 안 보여
하루를 해도 욕 먹을 각오로 정치권 일탈에 직을 걸고 맞서야

[염주영 칼럼] 유 부총리가 경제대통령이 돼라

올해 우리 경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20년 전의 외환위기에 비유될 만큼 어려운 시기가 닥쳤는데 위기 돌파의 선두에 서야 할 대통령 자리가 사실상 공석이다. 정부 내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경제를 책임진 사람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어떻게든 위기를 돌파해내겠다는 결기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안팎에서 불어닥칠 거센 역풍을 견뎌낼 수 있을까.

유 부총리는 지난해 말 발표한 '2017년 경제정책 방향'과 올 초에 있은 신년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토였던 창조경제 간판을 떼어냈다. 창조경제는 개념이 모호해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대신할 새 간판을 내걸지 않고 공란으로 비워두었다. 이는 적지 않은 손실이다. 400조원짜리 재정정책의 간판이 없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경제정책의 간판은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의지를 한두 마디로 압축한 것이다. 다양한 세부 정책들을 아우르는 사고의 기본틀이기도 하다. 이것이 없으면 정책은 일정한 방향성을 잃고 오락가락할 위험이 커진다. 그 결과로 각종 정책사업의 효율성이 낮아질 것이다. 간판을 바꿔 달지 못한 것은 대통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현재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낳은 결과다. 앞으로 국정 곳곳에서 이런 유형의 피해가 나타날 소지가 다분하다.

유일호 경제팀은 가야 할 방향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채로 항해를 시작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행로가 걱정스럽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유일호 경제팀을 사정없이 흔들어댈 것이다. 이미 야당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며 경제논리를 부정하는 정책과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바른정당과 새누리당마저도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하는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기업을 때려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것은 단견이다. 당장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가경영의 대의를 저버리는 것이다. 진정으로 민생을 걱정하는 지도자라면 반기업적 정서에 편승해 기업을 죽이는 정책을 해서는 안된다.

지금 유일호 부총리는 북풍한설이 휘몰아치는 벌판 위에 맨몸으로 서 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의지할 곳이 없다. 여당이나 청와대는 바빠서 정부를 지원해줄 형편이 못 된다. 이럴 때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 스스로 경제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유 부총리는 지난해 11·2 개각 발표 때 이미 짐을 쌌다. 그러나 타고난 관운으로 회생했다. 지난 13일에는 취임 1년을 맞았다. 이제 자리에 연연하거나 좌고우면할 군번이 아니다. 사심을 버리고 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라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정치권의 일탈에 직을 걸고 맞설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싸우다가 물러난다면 오히려 명예로운 일이 되지 않겠는가.

신자유주의 체제가 벽에 부딪힌 상황에서 양극화 해소 노력이 절실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성장전략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성장과 일자리 만들기는 누가 하는가. 기업이다. 분배만 잘 하면 성장은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무책임한 주장과,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포퓰리즘에 나라 경제를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가 잘 되려면 누군가는 욕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대권 경쟁에 나선 정치인들 가운데는 그걸 기대할 만한 지도자가 안 보인다. 유일호 경제팀이 큰 사명감을 갖고 분발해주기를 기대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