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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칼럼] 대권주자들 저출산 헛발질

육아휴직·보육환경 개선 등 고민없이 단기처방만 내놔
큰 그림 그리는 후보 나와야

[강문순 칼럼] 대권주자들 저출산 헛발질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우려가 처음은 아니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지 20년이 되는 해에 그것도 IMF의 경고라는 점에서 더 아프다. 한국의 인구구조는 20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간다. 우리는 가임여성 1명이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수인 합계출산율이 1.24명으로 최하위권이다. 지난해에는 1.2명 밑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장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든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인구 고령화 속도는 가장 빠르다. 2050년대 후반엔 국민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이고, 2065년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된다. 영국의 저명한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이 "2300년이 넘으면 단일민족으로서 한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 게 10년 전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대로라면 2750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진다는 끔찍한 경고까지 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근본 원인은 바로 '인구절벽'이다. 실제 인구가 줄면 음식점, 주점, 미용실 등이 문을 닫고 골목상권도 무너진다. 매출이 감소한 기업은 임금과 고용에 손을 대고, 정부도 세금이 덜 걷혀 재정적자가 확대된다. 이 악순환이 무서운 복합불황, 곧 잃어버린 20년이다. 일본이 그랬고 우리도 이미 경험하고 있다.

저출산의 폐해를 일찍 경험한 선진국들은 강력한 정책을 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일본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까지 한다. 인구 1억명을 유지하기 위해 장관 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1.26명까지 떨어졌던 출산율은 1.44명으로 높아졌고, 인구 1억명 붕괴 시점도 2053년으로 5년을 늦췄다. 프랑스는 '모든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는 슬로건 아래 출산율을 2%까지 끌어올렸다. 독일도 과감하게 이민.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인구수가 사상 최대다. 중국도 작년에 1가구1자녀 정책을 버렸다.

우리 정부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헛발질만 하다가 세월을 보냈다. 세액공제 100만원 받겠다고 결혼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저출산대책에 10년간 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나아진 건 없다. 80조원이면 신생아 일인당 1860만원을 쓴 셈인데 이 돈을 현금으로 나눠줬으면 사정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대선주자들도 심각성을 모르는지 절실함이 안 느껴진다. 출산휴가제, 유연근무제, 육아휴직 수당 인상, 보육환경 개선 등 잇따라 공약을 내놓지만 단기처방에 급급하고 자녀를 가진 가정에 너무 편중돼 있다. 정부의 헛발질과 판박이다. 그만큼 고민이 적었단 얘기다. 저출산대책은 혼인, 출산, 양육을 어렵게 만드는 일자리, 주거, 교육 등 근본적 문제에 대한 종합대책이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인구구조가 서서히 변화하는 것처럼 저출산정책의 효과도 더디게 나타난다.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세부대책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요즘 투자.소비.수출.고용.성장 등 5대 절벽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하지만 인구절벽은 이 다섯개를 합쳐놓은 것보다 훨씬 더 큰 핵폭탄급 이슈다. 답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선택과 집중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이 문제를 소홀히 하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