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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기어코 기업을 쫓아내는 나라

伊 국민기업 피아트 지주사, 경영 환경 좋은 네덜란드 이전
기업 떠나면 누가 경제 살리나

[이재훈 칼럼] 기어코 기업을 쫓아내는 나라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이어 이번엔 삼성SDI의 순환출자 해소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을 청탁의 대상으로 지목했다. 특검은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중대한 경영상 현안을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해결했지만 그것을 삼성이 했다면 부정청탁이라는 식이다. 광화문의 '촛불'은 "이재용을 구속하라" 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反)기업 정서가 온 나라를 휘몰아치고 있다.

요즘 만나는 재계 인사들은 "이러려고 한국에서 기업했나" "한국에서는 기업하는 게 원죄"라고 울분을 토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동네북이다. 권력에 돈 뜯기고 처벌까지 받는다. 기업들이 이리저리 뜯기는 준조세가 한 해 20조원이다. 기업들은 늘상 정경유착으로 이권이나 챙긴다는 세간의 비아냥이 더 억울하다.

외국인 주주 비중이 50%가 넘는 삼성전자의 경우 굳이 본사를 한국에 둬야 하느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하긴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매출과 이익의 90%가 해외에서 창출된다. 본사를 옮긴다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떠나버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삼성전자는 2015년 국내 법인세 수입의 7%인 3조1215억원을 냈다. 또한 삼성전자는 본사 10만명과 협력업체 직원 50만명을 포함, 국내에서만 수백만명을 먹여살리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치권은 '촛불민심'을 빙자하며 기업 쫓아내기, 재벌 때리기에 열을 올린다. 경제민주화.재벌개혁 입법의 결정판이라 할 상법 개정안의 통과 움직임이 단적인 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전자투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도입, 자사주 처분규제 같은 규제들은 대주주를 경영권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만들 것이라고 재계는 우려한다. 정치권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경영권 보호제도, 즉 차등의결권제나 포이즌필 같은 데는 관심이 없다.

국회에는 지주회사 규제 강화, 재벌 진출 업종의 제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헤아릴 수도 없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쌓여 있다. 법인세 인상 또한 다시 추진될 움직임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대선 주자들은 재벌개혁, 재벌해체를 대표공약으로 제시했다. 재벌을 때리면 경제가 살아나고 양극화도 해소되고 일자리도 생겨난다는 논리다. 재벌개혁론의 근거는 '낙수효과의 실종'이다. 대기업들이 돈을 벌어도 투자와 분배를 않고 제 뱃속만 채웠다는 것이다. 틀린 분석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처방이 잘못됐다. 기업 때리기가 만병통치약일 수가 없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기업들이 투자를 더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세계는 지금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 모시기 경쟁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업의 팔을 비틀면서도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등을 내걸고 성공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런 인센티브로 혼다.소니.파나소닉 등의 유턴을 이뤄냈다. 유럽 국가들도 법인세 인하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반대로 우리 정치권은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면서 경제활성화와 일자리창출을 말하고 있다. 말짱 거짓말이다.


이탈리아 국민기업이라는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지주회사인 엑소르는 지난해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겨 이탈리아에 충격을 안겼다. 네덜란드의 법인세가 낮은 데다 경영권 보호가 쉬워서였다. '기업인은 국적이 있어도 기업은 국적이 없다'는 말이 있다. 기업이 탈출하고 나면 경제는 누가 살릴 건가.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