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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기업할 자유, 잊었던 헌법적 가치

헌재 "권력은 경영 침해 말라"
반기업·반시장 행위에 경고해도 대선주자들 '기업 옥죄기' 열중

[이재훈 칼럼] 기업할 자유, 잊었던 헌법적 가치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단호하고 명쾌했다. 판결문(결정문)이 이렇게 쉽고 간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박 전 대통령이 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강요하고 이권사업 및 인사에 관여한 것에 대해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규정했다. 헌재는 시장경제와 경제적 자유라는 경제질서의 기본 원칙을 확인했다.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헌법적 가치를 일깨운 것이다.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한 것은 헌재가 대통령 등 정치권력과 기업의 관계를 상식의 틀 안에서 판단했다는 점이다. 헌재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요구를 기업들로선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권력이 기업에 돈을 요구하고 경영에 간섭하는 기존 관행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기업을 강요행위의 피해자로 본 것은 뇌물공여자로 본 특검의 판단과 대립된다.

사실 헌법에는 기업경영의 자유, 경제적 자유를 규정한 조항이 도처에 있다. 헌재는 이번에 직업 선택의 자유 또는 기업활동의 자유를 담은 15조와 재산권 보장을 담은 23조를 거론했다. 또한 126조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의 국유화나 경영 통제.관리를 못하도록 하고 있다.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흔히들 119조 2항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강조하지만 이에 앞서 1항 '경제 자유'가 있다. 2항은 어디까지나 1항의 보충 원리일 뿐이다.

기업경영의 자유를 확인한 최초의 결정은 24년 전에 있었다. 1993년 헌재는 전두환정권이 1985년 공권력을 동원해 국제그룹을 해체한 것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기업활동의 자유와 경영권 불간섭 원칙(헌법 119조1항, 126조)을 어겼다는 것이다. 이는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가 저서 '헌법은 살아있다'에서 '대한민국을 바꾼 10대 위헌결정'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기업의 팔을 비트는 관치경제나 '수금통치'는 계속됐다.

헌재는 이번 탄핵심판을 통해 정치권력에 '더 이상 기업과 경제를 볼모로 잡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를 던졌다. 역대 정권은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각종 준조세를 걷고 4대강사업.창조경제사업 등 국책사업에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정부 지분이 없는 포스코.KT 같은 기업의 인사도 좌지우지했다.

국회는 더하다. 높아지는 반(反)기업.반시장 정서에 편승해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내걸고 기업을 옥죄는 규제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경영권 방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법, 인터넷은행을 반쪽짜리로 만든 은산분리, 마트 의무휴업을 늘리는 법안, 청년고용할당제 확대 법안처럼 기업자유를 침해하는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모금 강요를 빌미로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가 기업에 1조원을 뜯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대선주자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 한심하다. 모두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심지어 재벌해체를 말할 뿐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외치는 이는 눈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어느 후보는 4대 재벌을 콕 집어 손보겠다 했고, 또 다른 후보는 기업의 '부당이익'을 몽땅 환수하겠다고 공언했다. 헌재의 탄핵 인용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리라는 생각까지 하지 못하니 그저 딱할 뿐이다. 시장경제와 기업을 존중하지 않는 대통령은 언제든 탄핵 1순위가 될 수 있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