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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총리후보 똑 부러지게 내보라

정책 공약은 ‘퍼주기’ 엇비슷
누굴 총리로 쓰느냐에 따라 대권주자 성향.자질 드러나

[곽인찬 칼럼] 총리후보 똑 부러지게 내보라

미안한 얘기지만, 잘다. 고만고만한다. 냉큼 믿음이 가질 않는다. 최선은커녕 차선도 아니고, 최악을 피해 차악을 뽑아야 할 판이다. 투표일(5월 9일)이 코앞인데 누구한테 표를 던져야 할지 모르겠다. 작년 11월 미국 유권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을 놓고 저울질하다 덜 나쁜 트럼프를 골랐다. 잘한 선택인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래도 미국은 우리보다 낫다. 후보 자질을 검증하는 장치를 여럿 뒀다. 두 후보가 맞짱토론도 몇 번 했다. 내가 더 주목하는 장치는 러닝메이트, 곧 부통령 후보 인선이다. 트럼프는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주 지사를 골랐다. 펜스는 12년간 하원의원을 지낸 덕에 의회 사정에 밝다. 트럼프는 워싱턴 아웃사이더다. 펜스는 그 공백을 메울 적임자란 평가를 받았다.

그 전에도 미 대통령 후보들은 제 약점을 부통령 인선으로 메웠다. 2008년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는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을 골랐다. 바이든은 오바마보다 19살 많은 백전노장이다. 상원의원 경력만 36년이다. 사실 부통령 후보가 투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그렇지만 대통령 유고 시 승계서열 1위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자리는 아니다.

부통령 인선은 대통령 후보의 용인술을 엿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2008년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는 40대 여성 알래스카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로 발탁했다. 세라 페일린은 단박에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열세이던 매케인은 한 방을 날린 듯했다. 그러나 페일린은 곧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그해 선거에서 매케인은 민주당 오바마에 졌다.

우린 부통령이 없다. 그 대신 대통령 유고 시 국무총리가 뒤를 잇는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은 역설적으로 총리가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 보여준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누굴 찍을지 헷갈리는 이들이 많다. 이럴 때 총리 지명은 유권자 서비스로 제격이다.

투표 전에 총리 후보를 밝혀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차기 대통령은 인수기간 없이 곧바로 일을 한다. 하루도 허투루 쓸 수 없다. 인수위가 있어도 새 정부가 출범하면 몇 달은 허송세월하기 일쑤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다 그 덫에 걸렸다. 이번엔 누가 되든 국회 내 소수파다. 서두르지 않으면 언제 차기 정부가 제모습을 갖추게 될지 모른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총리 후보로 염두에 둔 분이 있다"고 말했다. 출신 지역은 비영남권으로 좁혔다. "마지막 단계에 가면 가시적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후보는 충청.영남권 인물을 놓고 저울질 중이다. 안철수 후보는 아예 국회가 추천하는 사람을 총리로 지명하겠다고 했는데 재고하기 바란다. 우리 국회는 아직 그런 수준이 아니다.

투표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3일부터는 여론조사도 공표할 수 없다. 감질나게 굴지 말고 오늘이라도 지지율 1위 문 후보가 선도적으로 총리 내정자를 발표했으면 한다. 다른 후보들도 그 뒤를 따르면 좋겠다. 이왕 하는 김에 승계서열 2위인 경제부총리까지 발표하면 더 좋고.

안다. 총리 내정자 발표는 위험이 크다. 이름이 나오는 순간 신상털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대통령을 꿈꾸는 이라면 적어도 그런 배짱은 있어야 한다. 거꾸로 득표에 플러스가 될 수도 있다.
통치는 결국 사람을 쓰는 일이다. 미국이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듯 우리도 투표 전에 총리 후보를 지명하는 전통이 서길 바란다. 5.9 대선이 출발점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