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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소연정 한번 해보라

20년 전에 DJP연합 경험
독일은 대연정도 잘 굴러가
민주.국민.바른 합치면 180석

[곽인찬 칼럼] 소연정 한번 해보라

권력이 주는 짜릿한 맛은 금은보화 저리 가라다. 그래서 나누기가 쉽지 않다. 동서고금이 다 그렇다. 조선 때도 그랬다. 특히 19대 숙종 때 심했다. 환국(換局), 곧 정권교체가 있을 때마다 피바람이 불었다. 이때 서인 영수 송시열이 사약을 받았다. 서인은 이를 갈았다. 정권을 탈환한 서인은 남인의 씨를 말렸다. 이후 남인은 조선이 끝날 때까지 두번 다시 정권을 잡지 못했다. 당쟁사(史) 전문가인 역사학자 이성무는 "권력투쟁이란 상대방을 일망타진해야만 끝이 난다"고 썼다('단숨에 읽는 당쟁사 이야기').

이 전통은 대한민국 건국 뒤에도 찬연히 빛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사쿠라'란 말이 유행했다. 독재정권에 조금이라도 협조하면 죄다 사쿠라, 곧 변절자 소리를 들었다. 중도통합론이 필생의 신념이던 이철승 신민당 당수는 그 덫에 걸려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했다.

그런데 예외가 생겼다. 20년 전 '민주화 투사' 김대중 대통령이 5.16 쿠데타 세력인 김종필씨와 손잡고 정권을 잡았다. 득표율 40.3%로 이회창 후보를 1.6%포인트 차로 간신히 제쳤다. 김대중은 자민련 텃밭인 대전.충남.충북에서 모두 이회창을 이겼다. 김대중정부 초대 내각에서 총리 자리는 김종필에게 돌아갔다. 내각도 선임 재정경제부를 비롯해 경제 분야는 자민련 몫이었다. 이른바 DJP 연합은 정권 출범 3년여 뒤에 무너진다. 하지만 한국 정치사에서 김대중.김종필 공동정권이 차지하는 의미는 작지 않다.

독일은 참 이상한 나라다. 연정을 밥먹듯이 한다. 그것도 DJP 연합 같은 소연정이 아니라 메이저 정당끼리 합치는 대연정이다. 1920년대 바이마르공화국 때 좌우 대연정이 처음 나왔다. 전후엔 1960년대 우파 기독교민주당(CDU)과 좌파 사회민주당(SPD)이 공동정권을 짰다. 기민당 소속 쿠르트 키징거 총리 아래서 빌리 브란트 사민당 당수가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맡았다.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는 세 차례 임기 중 1차, 3차가 대연정 통치다. 2005년 총선에서 기민당 메르켈은 진보 사민당과 손을 잡았다. 4년 뒤 2009년 총선에선 우파 연합만으로 소연정을 짰다. 2014년 총선에선 좌파 소연정이 가능했다. 그러나 사민당과 녹색당은 옛 동독 공산당 후신인 좌파당(The Left)과 권력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사민당은 차라리 대연정을 택한다. 현 메르켈 내각은 총리를 포함해 7명이 기민당,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비롯해 6명이 사민당 소속이다.

나라마다 역사와 전통이 다르다. 그러니 우리는 왜 독일처럼 못 하느냐고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나는 20년 전 DJP 연합에서 돌파구를 본다. 역시 DJ는 큰인물이다. 현 4당체제 아래서 문재인정부는 옴짝달싹 못한다. 정책공조? 말처럼 쉽지 않다. 유승민 경제부총리? 야당에서 사람 하나 발탁한다고 연정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소연정 카드를 정식으로 제안하면 어떨까.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을 합치면 딱 180석(120+40+20)이다. 국회 선진화법 60% 룰에 턱걸이한다. 한국자유당(107석)이 태클을 걸어도 정의당(6석) 도움을 받으면 쟁점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대신 일부 장관직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 양보해야 한다.
사전 정책조율도 필수다. 메르켈 3차 내각은 독일 역사상 첫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조건으로 출범했다. 대연정도 아닌 소연정을 야합으로 몰아붙이면 문재인정부는 정말 갈 길이 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