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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최태원식 공유인프라 모델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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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 해결에 활용" 실제 성공사례 나오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공유인프라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19일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한자리에 모인 확대경영회의에서다. 최 회장은 "SK가 가진 인프라를 공유해 누구나 창업을 하고, 사업을 키우고,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껏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은 기부.자선 같은 소극적 수준에 머물렀다. 최 회장은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SK는 대기업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사회문제 해결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새 정부 코드 맞추기로 보는 시각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편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최 회장은 작년 같은 회의에서 "이대로라면 우린 서든데스(급사)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딥 체인지, 곧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공유인프라 화두는 딥 체인지 2.0으로 볼 만하다.

한국 재벌은 전환기에 서 있다. 창업주 세대가 끝나고 지금은 2세, 3세가 뒤를 잇고 있다. 맨땅에서 일어선 창업주 시대엔 정통성 시비가 없었다. 그러나 경영권이 세습되면서 재벌을 보는 눈초리가 달라졌다. 정치권에선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재벌 때리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개혁을 공약했다. 그런데도 재벌들은 변신에 늑장을 부리다 작년 탄핵 정국 때 된통 당했다.

미국을 보라. 자본주의 낙원이라지만 반기업정서는 우리만큼 세지 않다. 왜 그럴까. 세계 최고 갑부라는 워런 버핏은 "나 같은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층에 인기가 높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2015년 거의 전 재산을 자신이 만든 재단에 기부했다. 일론 머스크(테슬라), 제프 베조스(아마존) 같은 혁신가들은 대중에게 기업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지속적으로 일깨운다.

재벌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른다. 더구나 문재인정부는 재벌을 뜯어고치겠다고 벼른다. 수동적으로 당하느니 선제 대응이 낫다. 다행인 것은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합리성을 중시하는 실력파라는 점이다. 여러모로 최태원 회장이 공유인프라 화두를 꺼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

SK는 재계 빅4 중 하나다. 최 회장은 올해 57세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재벌 총수로서 무게감도 생겼다. 재계를 대변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힘을 잃었다. 또 예전의 삼성 이건희 회장처럼 재계를 상징하는 인물도 찾기 힘들다.
앞으로 최 회장에게 더 큰 역할을 기대한다. 당장 말로만 그치지 말고 공유인프라를 활용한 상생모델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래야 한국에서도 존경받는 기업, 위대한 기업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