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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씨티銀 갈등에 왜 정치가 끼어드나

점포 축소는 세계적 추세.. 혁신에 훼방 놓지 말아야

한국씨티은행 노사 갈등이 묘하게 흐르고 있다. 정치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집권당 의원들에 이어 일자리위원회도 경영진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씨티은행은 지점을 대폭 줄이려 한다. 창구를 찾는 손님들이 갈수록 줄기 때문이다. 대신 남는 인력은 자산관리(WM)센터, 비대면 디지털센터 등에 재배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노조는 지점 폐쇄가 해고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한다.

이런 갈등은 노사 양자대화로 풀면 될 일이다. 그런데 제3자인 더불어민주당이 불쑥 개입했다. 지난 15일 여당 의원 12명은 기자회견에서 "씨티은행은 점포 폐쇄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19일엔 박진회 씨티은행장이 이용득 의원을 만났다.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은 20일 "지난 8일 박진회 행장이 찾아와 점포 축소로 인한 인력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경영상 판단에 정치가 간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정부 지분이 없는 사기업일 때는 더욱 그렇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기업 일은 해당 기업에 맡기는 게 상책이다. 정치가 끼어들면 비효율을 부르고 부실을 낳는다. 더구나 한국씨티은행은 미국계 금융사다. 그러잖아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미국이 자꾸 시비를 건다. 정치권이 괜한 빌미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

은행 점포 축소는 대세다. '뱅크 3.0'의 저자인 브렛 킹은 지난봄 파이낸셜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인 대부분이 앞으로 1~2년 안에 은행 점포를 찾지 않고 모든 금융을 스마트폰에서 누릴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미 영국.미국 등 선진국 은행권엔 점포 폐쇄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에서도 케이뱅크와 같은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아예 처음부터 점포를 두지 않는다. 사실 씨티은행은 뒤늦게 이런 추세를 따랐을 뿐이다.

그런데도 씨티은행은 노조와 정치권의 협공에 걸렸다. 이러면서 무슨 4차 산업혁명을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최대 걸림돌은 노조와 정치권이다. 다른 시중은행들은 '무모하게' 총대를 멘 씨티 사례를 지켜보고 있다.
디지털 혁신 노력이 좌절되면 그 여파는 만만찮을 것이다. 한국의 금융산업 경쟁력은 아프리카 수준이란 비아냥을 받는다. 이번 소동을 보니 그 이유를 알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