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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착한 성장 추구"...GDP 대안지표 마련 지시

"수치적 성장이 아닌 국민의 행복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달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경제팀에 주문한 과제다. 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그간 한국경제가 채택했던 성장률 중심 정책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국내총생산(GDP) 중심의 주류 경제학이 안고 있는 성장론의 한계점을 직시한 것이다. 이는 동시에 지난 60여년 한국 경제를 지배해 온 '박정희식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종언이기도 하다.

■文대통령, GDP보완 지시
청와대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11일 "향후 경제패러다임은 포용적 성장, 착한성장론에 기반하게 될 것이며, 이는 국민성장론을 축으로 일자리중심 성장, 소득주도성장, 동반성장, 혁신성장이란 네 바퀴 성장론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보좌관은 "과거 정부에서 747정책(이명박 정부), 474정책(박근혜 정부)등 구체적인 경제성장률을 발표했지만, 목표치를 과도하게 잡고 무리하게 성장정책을 추구하는 데에서 문제들이 발생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의 '국민의 삶의 질' 측정방안에 대한 지시에 따라 경제팀 내부에선 관련한 논의를 구체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4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한 국제콘퍼런스에서 "GDP는 새로운 경제활동을 반영하지 못하는 만큼 삶의 질을 균형 있게 측정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시각은 경제성장이라는 하나의 지표에 매달려 국정 방향을 잘못 이끌어왔다는 일종의 반성과 비판적 시각에 기인한 것이다.

소위 'GDP이즘'으로 불리는 'GDP만능주의'에 대한 문 대통령의 비판적 시각은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로 프랑스 등 유럽사회에서 제기됐던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성찰과 대안지표 마련을 위한 구상과 맞닿아 있다. GDP중심 경제정책이 분배구조 왜곡을 심화·방치시켰으며 경제비효율과 낭비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확산됐다.

당시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 장 폴 피투시 등을 섭외해 '경제성과와 사회진보 측정위원회'를 설치해 GDP가 경제 성과 및 사회진보 지표로 갖는 한계점을 파악할 것을 주문했고,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EU)은 'GDP와 그 너머'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행복지수나, 인간개발지수 등 보조지표들은 개발됐으나 현실적으로 아직까지 GDP를 완전히 대체할 만한 대안지표는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 '착한성장' 추구
성장률 타켓팅 정책의 사실상 폐기는 저성장 시대, 금리인하.부동산 정책 등의 인위적 성장정책이 자칫 거품만 만들어내고 경제체질만 약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인식에 기반한다. 그간 성장률 목표제는 기획재정부 등 경제관료들에겐 연간 달성해야 할 과제로 여겨져왔던 게 사실이다.

가령 정부가 연말에 이듬해 성장률 전망치를 4.0%으로 정했다치면, 그 수치는 발표와 함께 더 이상 전망치가 아닌 목표치로 전환된다. 추가경정예산과 금리 인하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전통적인 수단들이다. 케인즈식 성장 공식의 충실한 구현이었다.

문제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수단들이 대부분 기업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낙수효과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재정투입은 소득불균형만 심화시키고, 기업의 자생력만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성장률 타겟팅 정책 폐기가 성장을 포기한다는 말은 아니다. 김 보좌관은 "포용적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수치중심의 성장 달성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보좌관은 "현재 경제구조로는 이 정부 말에 0%대로 성장률이 떨어질 것"이란 위기감을 드러내며, "적정 수준의 성장률을 '2%대 중·후반'으로 유지하면서, 일자리·복지 등으로 재원을 투입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밝혔다. 2%대 성장률 자체가 역설적이게도 정부로선 최대한 방어해야 하는 숫자인 셈이다.

단기성장에 집착해온 5년 단임제 정부의 한계를 뛰어넘어보겠다는 구상이기도 하다. 당장 성과를 거둘 수 없어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미래세대를 위한 성장의 밑거름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백년지대계의 성장해법을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다만 국민의 삶과 밀접한 부동산 시장에 대해선 "연착륙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해 급격한 수준의 정책 구사는 지양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같은 경제패러다임 전환 구상은 오는 20~21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재정전략회의에서 일부 제시될 예정이다. 재정전략회의에선 향후 5년간 문 대통령의 복지공약 등을 구체화할 재원마련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의 공약 실행엔 향후 5년간 178조원(연평균 35조60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재정개혁을 통해 5년간 112조원(연평균 22조4000억원)을, 세입개혁을 통해 5년간 66조원(연평균 13조2000억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방산비리 등 비리관련 예산은 모두 삭감해 연평균 18조4000억원(5년간 92조원), 고소득자 과세 강화와 고액상속증여 세부담을 늘려 연평균 6조3000억원(5년간 31조5000억원)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다만,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 3대 세목에 대한 증세는 가급적 신중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