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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FTA 개정 벼르는 美 … 협상팀도 못꾸린 韓

USTR "특별공동委 열자".. 우리 통상본부장은 공석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뜯어고치자며 파상 공세를 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2일(현지시간) "협정의 개정 필요성을 고려하고자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바로 지난달 말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한·미 FTA 재협상을 시작하고 있다"고 못박았다. 그로부터 채 보름이 안 돼 USTR는 정식 공문을 보냈다. 특별공동위는 이르면 한달 안에 열린다. 여기서 개정협상 여부를 결정한다.

지레 겁먹을 건 없다. 이미 우리는 대미 FTA 협상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였다. 협정이 발효된 지 5년 만에 미국이 새로운 협상을 요구한 것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2008년에 쇠고기 협상을 했고, 2010년엔 자동차.의약품 등을 놓고 추가협상까지 했다. 일각에선 오히려 이번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분야 등에서 미국에 역공을 취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산업통상자원부 여한구 통상정책국장은 13일 "한·미 FTA를 하루아침에 폐기하면 미국 업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금물이다. 이명박정부 첫해 소고기 협상과 뒤이은 광우병 파동에서 보듯 FTA 협상은 '뜨거운 감자'다. 상대방이 미국일 때는 더욱 그렇다. 논리적 모순도 우리에겐 부담이다. 과거 야당 시절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에 한.미 FTA 재협상을 촉구했다. 국회에선 '신을사늑약'이란 말까지 나왔다. 지금은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문재인정부는 미국의 공세를 막아내느라 바쁘다. 앞으로 대미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면 우리쪽 논리부터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협상팀 공백이 걱정이다. 새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안에 통상교섭본부장을 신설하는 내용을 정부조직 개편안에 담아 국회에 제출했다. 본부장은 USTR 대표의 맞상대다. 그러나 개편안은 언제 국회를 통과할지조차 불투명하다. 당연히 차관급 본부장(대외 장관급) 인선도 미뤄졌다. 직속상관 격인 산업부 장관 자리도 아직 비었다. 백운규 후보자 청문회는 19일에야 열린다. 게다가 백 후보자는 통상과는 거리가 먼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다.

정부는 국내 사정을 설명하고 특별공동위 개최를 미루고 싶어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선뜻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본부장 공석을 모를 리 없는 미국이 서두르는 이유를 잘 살펴야 한다. 미국은 곧 무역보고서를 내놓는다.
한국과 교역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길 게 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힘껏 고삐를 죄는데 우린 협상팀조차 꾸려지지 않았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 문재인정부의 통상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