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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덜컥 올린 최저임금, 재정이 감당할까

예산을 화수분처럼 취급.. 선의 좋지만 결과 불투명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6.4% 많은 시간당 7530원으로 올랐다. 이 가운데 9%포인트는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한다. 내년 한 해 3조원가량 된다. 최저임금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소득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로 꼽힌다. 이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도 최악이다. 5월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는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16.4% 인상은 공약 이행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처럼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몇 가지 우려를 낳는다. 세 가지만 들어보자.

먼저 국가 재정이다. 문재인정부는 나라 곳간을 화수분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내년에 쓸 3조원은 무슨 수를 쓰든 마련한다고 치자. 공약을 지키려면 내년, 후년에도 비슷한 비율로 또 올려야 한다. 덩달아 정부 지원금은 껑충 뛴다. 최근 세금이 잘 걷힌다고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 재정은 흔히 깡총한 이불에 비유된다. 어깨를 덮으면 발이 시리고, 발을 덮으면 어깨가 시리다. 과연 문재인정부가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었는지 의문이다.

정부가 도와준다고 영세 자영업자들의 근심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중기중앙회는 내년 최저임금 추가 부담액이 15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정부 보조금만으론 어림없단 얘기다. "영세기업들이 범법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하소연을 가볍게 들어선 안 된다.

또 영세 자영업자들을 코너로 몰면 시한폭탄 빚이 걱정이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은 '자영업자 대출건전성 보고서'에서 작년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빚)을 480조원으로 추산했다. 한 해 전보다 14% 늘었다. 자영업자는 일반 근로자에 비해 빚도 많고 연체율도 높다. 금융당국은 최저임금 인상의 불똥이 대출 건전성을 흔들지 않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최저임금 준수율도 잘 따져봐야 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근로자가 280만명가량 된다. 올해는 310만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근로자 6명 중 1명꼴로 법정 수준을 밑도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뭉텅 더 올리면 자영업자들은 꼼짝없이 '범법자'가 되거나 가게 문을 닫는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경구가 있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뜻이다. 정부가 시장에 깊숙이 개입할 때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선의에 얽매인 나머지 뻔한 부작용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가 반면교사다. 생전에 김대중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동시에 갖추라고 말했다. 문재인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서생적 문제의식에 치우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