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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소득주도 성장론 불안하다

검증 안 된 비주류 대안을 국가 정책으로 덥석 받아.. '5년 실험' 감당할 수 있나

[곽인찬 칼럼] 소득주도 성장론 불안하다

궁금했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어디서 온 걸까. 문재인 대통령은 왜 여기에 푹 빠졌을까. 그래서 뒤져봤다. 먼저 국제노동기구(ILO) 웹사이트.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소득주도 성장론을 주도한 곳이다. '임금주도(Wage-led)' 성장에 관한 글이 여럿 보인다.

그중 2012년에 나온 '임금주도 성장:개념과 이론 그리고 정책'을 들춰본다. 영국 킹스톤대학의 엥겔버트 슈톡하머 교수와 캐나다 오타와대학의 마크 라브와 교수가 같이 썼다. 두 사람은 임금주도 성장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장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는 금융위기 이후 만신창이가 됐다. 두 교수는 포스트(후기) 케인스주의자란 공통점이 있다. 세계 경제학계에서 보면 비주류다. 라브와 교수의 책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 입문-대안적 경제이론'은 우리말로도 번역돼 있다.

임금주도 성장은 한국에 들어오면서 소득주도 성장(Income-led growth)으로 바뀐다. 홍장표 교수(부경대)는 "임금주도 성장은…소득을 늘려 내수시장을 확충한다는 의미를 부각시킨다는 차원에서 소득주도 성장으로 소개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홍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2016년)라는 책에 '소득주도 성장과 산업생태계 혁신'이란 글을 실었다. 문 대통령의 경제 멘토인 홍 교수는 지난 7월 경제수석에 임명됐다.

학자 홍장표의 글은 명쾌하다. 소득주도 성장은 '파이를 나누어 쓰는 단순한 분배전략'이 아니다. "소득불평등을 완화시켜 내수시장을 늘림으로써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자는 성장전략의 일종이다." 문 대통령이 반한 이유를 알 만하다.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니, 이런 마법을 어느 정치인이 마다하겠는가.

여기서 최저임금 정책이 나왔다. 임금이 올라 지갑이 두둑해지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공장이 돌고, 공장이 돌면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논리다. 문재인정부가 무리를 해서라도 시급을 1만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이유다. 소득주도 성장에선 부자 혼자 1000만원을 버는 것보다 10명이 100만원씩 버는 게 낫다고 본다. 그래야 소비지출이 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같은 이유에서다. 나아가 홍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두 명이 하는 일을 세 명이 나눠서 하자는 뜻이다.

뜻은 좋다. 염려되는 건 소득주도 성장이 검증된 전략이 아니란 점이다. ILO는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라고 만든 유엔 산하기구다. 따라서 ILO가 임금주도 성장론을 펴는 것은 당연하다. 요컨대 한노총이나 민노총엔 매우 유용한 이론이다. 그러나 비주류 경제학파가 주창하는 친노동 성장전략을 국가 정책의 뼈대로 삼는다? 글쎄다. 경제이론과 실제는 왕왕 딴판이다.

이미 우리는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치유하는 검증된 전략을 알고 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나라들은 튼실한 사회안전망으로 낙오자들을 돌본다. 세금을 많이 걷지만 기업은 자유롭게 풀어준다. 검증이 끝난 복지국가 모델을 놔두고 굳이 나라 장래를 실험에 맡길 이유가 있을까.

왕창 올린 내년 최저임금을 놓고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서 소비, 곧 내수가 성장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도 의문이다. 국가는 벤처가 아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정책실험은 위험하다. 국가 정책은 검증된 길을 걷는 게 옳다. 그래서 소득주도 성장전략은 불안하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