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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고비용 늪에 빠진 한국車

인건비 버거운데 통상임금까지.. "생산시설 해외로 옮겨야 할 판"
그래도 노조는 파업에 나서

[이재훈 칼럼] 고비용 늪에 빠진 한국車

지난주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내놓은 성명 하나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완성차 5사 모임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통상임금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현실화되면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아차의 통상임금 소송 1심 결과가 기업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란 주장이었다. '해외 이전'이란 말이 논란을 빚자 KAMA는 "경영위기를 가정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지나친 '엄포'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인건비 부담이 한계를 넘어선 상황을 호소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물론 완성차업계가 국내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긴 적은 없다. 업계는 국내에 신규 투자를 하지 않는 대신 미국.중국.인도.멕시코.동유럽 등에 생산거점을 늘려왔다. 토종업체인 현대.기아차는 1996년 이후 국내 공장 투자가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과도한 인건비 부담과 낮은 생산성, 다시 말하면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있다. 그 배경에는 회사가 어렵든 말든 '제몫 챙기기'에 열중해온 노조가 있다.

국내 완성차업체의 지난해 평균연봉은 9213만원, 현대차는 9400만원으로 일본 도요타의 7961만원(2015년 기준), 독일 폭스바겐의 8040만원(지난해 기준)보다 높다. 완성차 5사의 임금은 10년 새 84% 올랐다. 매출액 대비 임금 비중은 12.2%로 도요타(7.8%), 폭스바겐(9.5%)보다 높다. 제조업 경영의 한계선이라는 10%를 넘은 지 오래다.

하지만 국산차 한 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6.8시간으로 도요타(24.1시간), 미국 GM(23.4시간)보다 길다. 인건비 부담은 높고 생산성은 떨어지니 이익률이 낮아지고 연구개발(R&D) 투자 여력도 줄어든다. 수출.내수.생산이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악재' 속에 현대차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5.4%, 기아차는 3.0%로 5년 연속 하락했다. 현대.기아차의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2.7%로 폭스바겐(6.3%), GM(4.9%), 도요타(3.8%)와 비교하면 민망할 정도다.

통상임금 논란은 불에 기름 부은 격이 됐다. 기아차 노조는 소송에서 이기면 1인당 1억1000만원을 더 받게 되지만 회사 측은 3조원의 추가부담을 지게 된다. 기아차는 졸지에 적자기업으로 전락한다. 다른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도 커진다. 정기상여금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등도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업체 중 유일하게 실적이 좋은 르노삼성차는 수요 급증에도 공장 증설을 포기했다. 박동훈 르노삼성 사장은 "한국에서는 고용 유연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한번 뽑아놓으면 훗날 일감이 줄어도 감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회사 측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국GM의 철수설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3년간 누적적자가 2조원에 이를 만큼 심각한 한국GM의 비효율을 본사 측에서 어떻게든 바로잡을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한국차 위기론이 팽배한 와중에도 자동차 노조들은 임금을 올려달라며 파업에 나섰다. 현대차와 한국GM이 이미 부분파업을 했고 기아차와 르노삼성까지 가세할 움직임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파업으로 3조1000억원의 생산차질을 빚었다. 파업리스크는 고비용 구조를 고착시킨다.

문재인정부 들어 기업의 비용부담을 높이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비정규직 제로, 근로시간 단축 등 미처 열거하기도 힘들다.
가만 있다간 한국 차업체들이 자멸할 위기다. 한국은 자동차 생산기지로서 매력을 잃은 지 오래다. 기업들이 빠져나가면 일자리 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판국에 무슨 파업인가.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