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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젊을 때 쉬고 늙어서 일하는 나라

노년층 노동력 의존도 높아.. 복지 확충해 노인 쉬게 하고 젊은 노동력 활용도 높여야

[염주영 칼럼] 젊을 때 쉬고 늙어서 일하는 나라

젊을 때 일하고 노년에는 쉬는 게 정상적인 삶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꾸로다. 젊어서 놀고 늙어서 일하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양상은 삶의 행복도를 낮춘다. 국민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인적자본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흥미로운 통계를 내놓았다. 젊은 층과 노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을 국가별로 비교한 자료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65세 이상 노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이 35개 회원국 중 2위였다. 반면 25~29세는 31위였다. 노년층은 최상위권인 데 비해 젊은 층은 꼴찌 수준이다. 이 통계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한국인의 노동시장 진입과 퇴출 시기가 여타 선진국에 비해 한 박자 늦다. 노동시장에 늦게 들어가고 늦게 나온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을 과소고용하고 노년층을 과다고용하고 있다. 그래서 노년층에 대한 노동력 의존도가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높다.

이런 노동패턴이 바람직할까. 노년에도 노동을 하는 것이 건강 관리 등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러나 먹고살 방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노동시장에 남아 있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두 사람이 일생 동안 35년간 유급노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한 사람은 20대 후반에 일을 시작해 60대 초반에 은퇴하고, 또 한 사람은 30대 후반에 일을 시작해 70대 초반에 은퇴한다면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두말할 것 없이 전자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해서 저축한 돈으로 노후에 편히 지내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힘과 열정이 넘치는 청년기를 낭인으로 보내고 늙은 뒤에 호구지책으로 일해야 하는 삶을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제력에 비해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유독 낮은 것은 한 박자 늦은 노동패턴과 무관치 않다.

노동력의 신진대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인체는 신진대사가 활발할 때 쑥쑥 자란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의 키와 몸무게가 잘 자라려면 노동력의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65세 이상 노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이 31.5%로 OECD 평균(14.5%)의 두 배를 넘는다. 노년층 노동력이 젊은 층으로 잘 대체되지 못해서다. 젊고 활력이 넘치는 노동력을 놀리면서 활력이 떨어지는 노년층을 과도하게 고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구조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력의 신진대사를 막고 있는 요인으로는 병역의무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OECD 자료를 토대로 본다면 노년층의 퇴출 지연이 젊은 층의 진입기회를 잠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60대는 노후보장이 없는 세대다. 자식들은 봉양을 기피하는데 국가의 복지제도는 미비하다. 자식 낳아 기르고, 교육시키고, 결혼시켜 내보내고 나면 나이 60이 훌쩍 넘는다. 그때부터 자신의 노후보장을 위해 다시 일을 해야 한다.

고령층에 대한 노후보장 확대를 과잉복지라고 몰아붙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한 차원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노인복지가 노동시장의 신진대사력을 키움으로써 청년실업률을 낮추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분석까지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사람은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늙어서는 편히 쉬는 것이 정상이다. 노인을 쉬게 하자.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