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집필을 하지도 않고 남의 책을 표지만 바꿔 자신의 저서인 것처럼 출간한 이른바 '표지갈이'는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학계와 출판업계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는 ‘표지갈이’ 행태가 근절될지 주목된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저작권법위반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지방 국립대 교수 김모씨(57)의 상고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0월 31일 밝혔다. 함께 기소된 사립대 교수 2명에게도 벌금 1500만원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저작자가 아닌 자를 저작자로 표시해 저작물을 공표한 이상 범죄는 성립하고, 실제 저작자의 동의가 있었더라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며 "이러한 법리에 따라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2010년 9월 '전기회로'와 관련된 서적을 자신이 쓰지 않았는데도 공저자로 표시해 발간한 혐의(저작권법 위반)로 기소됐다. 그는 이 서적을 교원 업적평가 자료로 학교에 제출한 혐의(위계공무집행방해)도 받았다.
다른 두 명의 교수 역시 저작자가 아닌데도 이 책에 공저자로 이름을 넣었고, 이후 학교에 교원 업적평가 자료나 교수 재임용 평가자료로 제출한 혐의(저작권법위반 및 업무방해)를 받았다.
1심은 저작권법상 '공표(公表)' 행위를 최초로 저작물을 공개하거나 발행한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 저작권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업무방해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 등이 초판 발행된 책의 오.탈자를 수정해 다시 발행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추가한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2심은 "저작권법상 공표는 저작물을 공연, 공중송신 또는 공중에게 공개하거나 저작물을 발행하는 것"이라며 "저작자를 허위로 표시하는 대상이 되는 저작물이 이전에 공표된 적이 있더라도 범죄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며 저작권법 위반도 유죄로 보고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