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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본죽 알바, 어디 갔나요?

단골식당서 종업원 안 보여.. 햄버거집처럼 셀프로 주문
최저임금 실험에 조마조마

[곽인찬 칼럼] 본죽 알바, 어디 갔나요?

얼마 전 집 근처 본죽에 갔다 놀랐다. 자리에 앉았는데 홀에 종업원이 없다. 가만 보니 주문이 패스트푸드 식으로 바뀌었다. 내가 카운터로 가서 주문하고 결제하는 식이다. 당연히 물은 셀프다. 아르바이트 자리가 하나 사라졌다. 햄버거점에서 자동주문기 키오스크를 본 지는 꽤 됐다. 껑충 뛴 최저임금 대응책이다. 하지만 본죽 같은 죽 전문점도 그 영향권 안에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시장은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노무현정부는 2007년 비정규직을 보호하려 기간제법을 만들었다. 비정규직을 2년 넘게 쓰면 정규직으로 바꾸도록 했다. 시장은 잽싸게 반응했다.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1년11개월만 쓰고 내보냈다. 얄미운 편법이지만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정규직이 되면 맘대로 해고도 못하고, 월급은 더 줘야 한다. 늘 비용에 신경 쓰는 기업에 고매한 덕성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동시장은 정부가 함부로 끼어들 곳이 아니다. 이명박정부는 2009년 일자리 나누기, 곧 잡셰어링 정책을 강하게 폈다. 명분은 근사했다. 2008년 가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지는 통에 세계 경제가 푹 꺼졌다. 외환위기 때 대량해고 악몽이 되살아났다. 정부는 공기업 초임을 깎아서 남은 돈으로 인턴을 더 쓰라고 했다. 대기업에도 동참을 요청했다. 그러자 만만한 신입사원만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노조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기업들은 시늉만 했다. 인위적 시장개입은 실패로 끝났다. 예나 지금이나 청년실업은 고질병으로 남아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공기업을 주머니 속 공깃돌로 여기는 습관은 여전하다. 아니 더한 것 같다. 최근 인천공항공사는 협력업체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기존 공사 직원보다 몇 배나 많은 숫자다. 회사 재정이 화수분이 아닌 다음에야 장차 눈덩이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할까 싶다. 잡셰어링은 잠깐 하고 끝났다. 반면 정규직 전환은 되돌릴 수 없다. 가뜩이나 좁은 청년 취업문은 더 좁아졌다.

이번 결정은 정치색이 짙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이때 관료 출신 정일영 사장은 '연내 1만명 정규직 전환' 선물을 대통령에게 안겼다. 그 덕에 정 사장은 정권교체 뒤 으레 이뤄지는 낙하산 바람에도 끄덕 없다. 5년 뒤 인천공항공사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문재인정부는 과연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일자리정책이 되레 일자리를 걷어찬다. 정부도 감을 잡은 듯하다. 기획재정부는 새해 경제정책 방향에서 내년 취업자수 증가 폭을 32만명으로 잡았다. 올해와 같은 숫자다. 일자리정부란 이름이 민망하다. 적어도 40만명은 돼야 청와대에 상황판을 설치한 보람이 있지 않을까.

최근 미국은 법인세율을 최고 35%에서 21%로 낮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형 감세가 "궁극적으로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는 일자리를 뜻한다"고도 했다. 한국은 미국과 다른 길을 걷는다. 우린 정부가 일자리 창출의 주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공무원도 더 뽑기로 했다.
미국은 그 일을 기업에 맡겼다. 트럼프 행정부는 멍석만 깐다. 지난해 우리 대기업들은 유난히 실적이 좋았다. 돈주머니 두둑한 기업을 버려두고 일자리 정책을 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