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일제가 일본인을 위해 지은 공설시장 '남영 아케이드'
현대화 시기 놓치고 빈 점포만 수두룩... 도심 속 불모지대
*'다크 헤리티지'(Dark Heritage) 또는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는 '부정적 문화유산'을 말한다. '다크 헤리티지를 찾아서'는 주로 일제강점기 시대나 군부독재 시절 참혹한 참상이 벌어졌거나 그들의 통치와 권력 유지 수단으로 악용된 장소를 찾아가 과거와 오늘을 이야기한다. - 기자 말
▲ 서울 용산구 남영동 한강대로84길(4호선 숙대입구역 6번 출구)에 위치한 남영아케이드(용산공설시장)/사진=정용부 기자
▲ 콘크리트 외벽에 목재로 만들어진 이 건물은 낡고 노후해 유동인구가 많지 않고 현재 딱 두 곳에서만 장사를 하고 있다./사진=정용부 기자
남영아케이드(용산공설시장)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지어진 서양식 쇼핑몰 아케이드다. 건물은 콘크리트 외벽에 높은 천장을 가졌으며 9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도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상태다. 입구엔 ‘남영 아케이드’라는 한글 간판이 달려있어 복고풍 운치가 느껴진다.
1920년 <동아일보>에 따르면 일제는 용산 경정(京町·삼각지)에 공설 시장을 설치했다. 그러나 위치가 좋지 않아 1922년 10월에 이르러 지금의 자리인 연병정(남영동)으로 옮기면서 시장을 찾는 이가 많았다고 나온다.
이후 몇 차례 화재로 인해 수리를 거치다 해방 후 우리 국민이 인수해 약 1449㎡ 면적에 30여 개 점포가 가득 찼으며, 종로나 노량진에서도 물건을 사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남영동은 용산 미군기지와 바로 맞닿은 지역으로 일제강점기엔 ‘연병정’(練兵塲)으로 불리며 인근에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던 동네다. 아직까지도 일본군의 가족이나 군무원들이 살았던 적산가옥이 일부 남아 있는데, 용산공설시장은 군인이나 일본 사람들이 먹거리와 생필품을 사기 위해 찾던 시장이었다.
일제는 조선인과 구별해 신식 시장을 세웠다. 1914년 제정한 ‘시장 규칙’을 근거로 조선의 전통 재래시장과 구분된 일본인 거주자들의 필요에 의해 신식 시장을 전국에 지었다. 맨 처음 1910년 부산 ‘부평동시장’(현 깡통시장)을 시작으로 1941년까지 전국 53곳까지 늘어났다. 당시 한국의 시장이 주로 5일장이었던 반면, 쉬는 날 없이 매일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공설시장이 당시로선 대단히 신선한 대상이었다고 한다.
▲ 용산공설시장 위치
현재는 낡고 지저분하며 찾는 이 없는 도심 속 불모지대로 남아 있다. 1990년대 들어 급격한 하향세를 타다가 2010년 정부가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함에 따라 개발 움직임이 본격화됐으나 기획부동산 업체들이 들어오면서 동네 민심은 어느새 뒤숭숭해지더니 나중엔 흉흉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결국 남영아케이드는 재개발이라는 환상을 쫓다가 상권을 살릴 현대화 사업 시기를 놓치면서 투기꾼이 남기고 간 허물만 뒤집어쓰게 됐다.
■ 30여개 점포 중 남은 건 2곳… 이마저도 올해 한 곳 폐업
“일루와. 차 한 잔 하고 가” 흰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쌀집 주인이 주위를 배회하던 기자를 붙잡았다. 현재 골목 내엔 두 점포가 영업 중이다. 골목 끝 쌀집과 맞은편 잡화점.
언제부턴가 하나 둘 가게를 접고 떠났으며 이제 남은 이가 쌀집과 잡화점 2곳이다. 그럼에도 쌀집 주인은 이곳을 쉽사리 떠나지 못한 이유를 “정이 들어 어디 떠나지도 못혀. 이 집 터가 좋아. 이 집에서 판사가 나고 박사가 났어”라고 말했다.
맞은편 잡화점에는 송○○ 할머니가 있다. 남영 아케이드와 얽힌 지난 세월을 듣고자 말을 걸었으나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해, 지난해 9월 지역의 한 라디오에서 방송된 인터뷰를 인용한다.
“되든 안되든 그냥 살고 있어. 스물 두어 살에 혼자 여기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아들 둘을 여기서 벌어 키웠어. 70년대가 가장 좋았지. 그땐 미군부대에서 밥해 먹으러 오는 손님이 많았어. 매일 김치를 ‘한 다리이’씩 담갔어. 주머니에 돈이 가득 찰 때였지. 그때가 좋았어. 밤이고 낮이고 한시도 안 쉬고 일했어.”
50년 가까이 이 자리에서 장사를 했다는 할머니는 올 설까지가 마지막일지 모른다. 갈수록 불편한 관절에 더 이상 가게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영고성쇠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그 화려했던 시절이 지나고 이젠 그 쓸모를 다해 버려지다시피 남겨진 공간에는 지나간 세월을 기억해줄 이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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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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