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경총 일은 경총에 맡겨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수난의 연속이다. 지난 1970년 설립된 뒤 48년 만에 처음으로 회장과 상임부회장이 공석이 됐다. 지난 22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적임자를 뽑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대기업 회원사들이 중소기업 출신 회장 후보를 반대했다는 둥, 여권 실세 의원이 막후에서 움직였다는 둥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경총은 순수 민간 경제단체다. 이런 데까지 정치가 끼어들어 사달이 났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뒤 경총은 정권의 눈엣가시가 됐다.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토를 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정기총회에서 물러난 김영배 전 상임부회장은 지난해 5월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세금을 쓰는 일자리 정책을 비판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경총은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꾸짖었다. 점잖은 문 대통령치곤 꽤 강한 톤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도 김 상임부회장은 최저임금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등 쓴소리를 이어갔다.

사실 현 정권과 경총의 마찰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진보정권은 대체로 친노조 성향을 띤다. 사용자 권익을 대변하는 경총과는 구조적으로 부닥칠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보수정권이 민주노총과 충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경총이 진보정권 눈치만 살피면 존재 의미가 없다. 그런 경총은 진보정권에도 마이너스다. 재계의 입을 틀어막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되레 쓴소리를 반겨야 옳다.

그러잖아도 재계는 정권과 소통 창구를 잃었다. 과거 맏형 역할을 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위상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대안으로 대한상의가 있지만, 대.중소기업을 모두 대변하는 기구의 성격상 한계가 있다. 이제 그나마 목소리를 내던 경총마저 입을 꼭 다물 판이다.

정권이 민간단체에까지 영향력을 뻗칠 수 있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지난 21일 열린 철강협회 정기총회는 정부 성토장이 됐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막무가내 공세에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그 바람에 통상 '낙하산'이 차지하던 상근부회장도 뽑지 않았다. 시장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펴려면 민간단체 내부 기류를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회장.부회장 선출에서 자율이 필수다. 경총은 조만간 새 회장을 다시 추대할 예정이다. 누굴 뽑든 경총 일은 경총에 맡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