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대한민국, 대타협의 길을 묻다
미투운동 촉발시킨 원인 결국 일자리 권력 문제…노사가 중심잡고 격차 줄여야
근로자 일 더 시켜 생산성 늘리려고 하면 실패…노조도 더 달라고만 하면 안돼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문성현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새문안로 노사정위원회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노사정이 참여하면서 새롭게 재편될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는 노동시장 격차 해소문제를 핵심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약력 △1952년 △경남 함양 △경남 진주고 △서울대 경영학과 △동양기계 노동조합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대표 △민주노총 전국금속연맹 위원장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위원
노사정 대표자 6명이 모두 참여한 회의가 8년여 만에 열렸고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 출범이 예고됐다. 사회적 대화는 곧 노동계와 경영계가 사회적 대타협을 하기 위한 수순이다.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와 경제가 그만큼 치유하기 힘든 중병에 걸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 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년 연속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었고 청년실업률이 2017년 9.8%, 체감 22%를 기록하는 등 고용지표도 최악이다. 청년들이 취업을 못하면서 결혼, 출산까지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대담=김규성 경제부장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원회)는 최근 이 같은 난국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논의 원탁 테이블을 이끄는 조직이다. 2월 27일 서울 새문안로 노사정위원회에서 파이낸셜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문성현 노사정 위원장의 발언은 간단했지만 의외로 확고하게 난맥상의 해법을 제시했다. 문 위원장은 "방법이 있다면 찾아서 해야 하고, 언제까지 서로의 탓만 할 수 없다"며 "앞으로 초점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이 상태로 둘 것인가가 돼야 한다"고 했다.
문 위원장은 이어 "좋은 일자리는 결국 중소기업을 양질의 일자리로 키우는 것"이라며 "훗날 아이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해도 먹고살기 어렵지 않도록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을 키우는 것이 '격차' 해소의 시작이며, 이를 사회적 대타협기구에서 논의할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위원장은 대-중소기업 갈등 청년실업, 저출산, 교육 문제 등 모든 사회문제의 배경에는 비정규직이거나 중소기업 등 일자리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노사가 중심이 돼서 노동시장 격차 문제를 풀어나가는 해법(대타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 노동계가 중심적이고 주도적 역할을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가 매번 그래왔듯이 '더 달라고'라고만 했을 때는 대타협에 실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문 위원장의 지적은 대타협을 위해서는 '귀족 노조'로 불리는 대기업 노조의 양보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출신이지만 '저임금.장시간노동.저생산' 문제의 해법 마련을 위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격차 등 풀어가야 할 문제는 많다. 이 같은 사회적 갈등을 노사가 대타협을 통해 주도해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면서도 격차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하는 문제인 만큼 이를 풀어야 할 당사자는 '노사'일 수밖에 없다는 게 문 위원장의 설명이다.
문 위원장은 "현재 일자리는 10명 중 2명만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가도록 설계돼 있는 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기업은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결국 중소기업으로 청년들이 갈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청년실업의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문성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사진=김범석 기자
문 위원장은 교육 문제와 저출산 문제도 결국 양질의 일자리 문제와 결을 같이한다고 지적했다. 문 위원장은 "대학 간 서열 문제와 스펙 쌓기는 결국 얼마 없는 양질의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라며 "저출산 배경엔 10명 중 8명이 비정규직이거나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 위원장은 최근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대해서도 그 배경에는 결국 일자리 권력 관계의 문제이자 차별 문제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처럼 상대적 격차는 전방위적으로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다"며 "놓고 보면 노동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문제며, 우리가 일하는 조건 속에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대기업-협력사,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해법으로 SK이노베이션과 기아차 광주형 일자리를 예로 들었다.
일자리 격차 해소 문제는 현재의 갈등 해소뿐 아니라 생산성과 아이들의 미래를 봤을 때 해소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SK이노베이션는 노사 합의로 임금인상률을 물가에 연동하기로 하는 한편 직원 급여 1%에 회사가 같은 금액을 매칭 적립한 상생기부금을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조성된 2%가 협력업체 처우개선에 사용됐다.
문 위원장은 "SK이노베이션의 협력사 지원은 아이들의 미래에서 봤을 때 협력사의 정규직화가 곧 아이들의 양질의 일자리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협력사 처우개선이나 비정규직 문제도 이 같은 시각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처우개선 문제과 같이 비용이 드는 문제는 노사가 대화채널에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이러한 상생의 노력이 앞으로 퍼져나갈 것이란 희망을 갖는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조선·자동차 산업이 구조조정을 겪을 때마다 등장하는 노동생산성 문제에 대해서는 "문화와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 위원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공장이나 로봇 장비율이 세계 1위로, 생산성이 낮은 것은 아니다"라며 "그 대신 비정규직을 많이 쓰고 시간관리를 못해서 (노동생산성 낮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정규직은 똑같이 일은 하고 임금이 낮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뒷받침해줬는가"라고 반문했다.
문 위원장은 저임금.장시간의 노동생산성을 가지고 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들도 설비개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모색해야지 근로자에게 한시간 더 일을 시켜서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언급했다.
문 위원장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근로자가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상황을 공유해야 한다. 노사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라며 "노동이 목적어가 아닌 주어가 되는 포용적 노동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