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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학번 대학생, ‘화석 선배’는 서럽다

-대학에선 나이 많은 게 죄...움츠러든 고학번 
-4년제 대학졸업에 평균 男 6년 2개월, 女 4년 4개월 걸려 
-취업난에 대학 오래 다녀 “늦었다는 생각” 심적 부담

08학번 대학생, ‘화석 선배’는 서럽다
/사진=연합뉴스

화석, 공룡, 암모나이트...

몇 해 전부터 대학을 오래 다닌 고학번을 고대생물에 빗대 우스갯소리로 부르는 말이다. 최근에는 고인물(고인 물은 썩는다), 틀딱(틀니 부딪히는 소리, 노인 비하) 같은 말을 쓰기도 한다. ‘화석 선배’들은 졸업할 나이에 여전히 대학에 남았다는 시선이 힘겹다.

■공무원 준비하다보니...서른 살 대학생
“지난해 1학년이 듣는 전공필수 토론수업을 들었어요. 1학년들이 제 학번을 듣고 놀라더라고요. 웃어넘겼지만 좀 그렇더라고요.”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09학번 이모씨(29)는 9년째 대학을 다닌다. 군복무를 마치고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4년째 시험에 매달리느냐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진다. 군휴학을 제외한 휴학기간만 3년 6개월. 4학년 2학기를 앞둔 지금은 대학 고시반에서 공부한다. 이씨는 “수업 때 교수가 학번 순으로 출석을 부르면 항상 첫 번째다. 서른 살이라서 그런지 묘한 기분”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나이 많은 고학번에게 가장 큰 적은 고립감이다.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하다보니 혼자 공부하고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씨는 “하루 종일 놀러가고 싶은 걸 참는다”며 “관계도 대화도 단절된 채 혼자 있다 보니 사리가 나올 지경이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정해진 휴학기간을 모두 사용했다. 다음 학기는 반드시 학교를 다녀야 해 올해 시험부담이 크다.

취업난과 공무원 시험 준비 등으로 대학생 휴학은 흔한 일이다.

21일 통계청 ‘2017년 5월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4년제 대졸자 중 절반은 휴학을 경험했다. 휴학기간은 남자는 군휴학을 포함해 2년 6개월, 여자는 1년 4개월 정도다. 4년제 대학졸업에 남자는 6년 2개월, 여자는 4년 4개월이 걸려 졸업한다. 졸업 후 처음 취업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약 11개월이다.

08학번 대학생, ‘화석 선배’는 서럽다
2018학년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시점에서 본 선배들을 우스갯소리로 비유했다. 30살 대학생들은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화석이라고 말한다./사진=인터넷 캡처


■후배 마주치기 싫어 온라인강의만
서른 살 대학생들은 후배 또는 교수를 마주치는 걸 꺼린다. 최대한 조용히 다니자는 게 이들의 웃지 못할 하나의 목표다.

“마지막 학기 수업은 전부 온라인 강의에요. 그냥 조용히 다니고 싶어요.” 성균관대 경제대학 09학번 최모씨(29)는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를 수강 중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보니 졸업은 늦어졌다. 4과목을 수강하는 데 모두 온라인 강의다. 1학년 때 F학점을 맞은 과목의 재수강이다. 최씨는 “후배들과 마주치면 괜히 창피함을 느낀다”며 “수업에 들어가면 교수님이 아직 학교를 다니는 이유를 공개적으로 물어보기도 하고 조별과제를 해도 유독 돋보여서 사람들을 피하게 됐다”고 불편해 했다.

또래에 비해 뒤처졌다는 조바심이 화석선배를 우울하게 만든다.

중앙대 인문대학 08학번 박모씨(29)는 올해 18학번 새내기들과 꼭 10살 차이가 난다. 박씨는 대학에 합격하고도 수능시험을 2번 더 준비했다. 휴학도 여러 번 했다. 학교 밖에서 자신이 어떤 인생을 원하는 지 적극적으로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사실 신경을 안 쓰려고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연령별 성취와 위치가 정해져 있다”고 답답해했다.

전문가들은 고학번들이 학교 다니면서 느끼는 우울감이 한국 집단문화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택광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 사회는 동질성에 맞춰 구별 짓는 문화가 강하다. 학번, 기수 문화 같은 게 대표적 예다”며 “졸업하지 못한 나이 많은 학생을 저학번 혹은 사회가 자신과 다르다고 느끼다보니 나온 문화다”고 설명했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과거 고학번 복학생은 지적 대상의 선배였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취업 등을 이유로 일반 학생들과 구별됐다”며 “현재는 불안정한 취업시장에서 일반 학생들이 고학번 선배를 경쟁자로 보고 이들과 경쟁의식 과정에서 나타난 시선으로 대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