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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Change] 러 극동개발의 심장부 … 여객항만·조선소·함대가 나란히

新북방경제벨트를 가다 <2>북방 교두보 러시아·극동 3. 블라디보스토크
유라시아 철도·바닷길 종착지 이제는 북방경제 교두보로 남북러 경협 시대 기대감 커져
푸틴, 9월 동방경제포럼에 남·북·중·일 정상 모두 초대 러시아의 야심 전세계에 과시

[Big Change] 러 극동개발의 심장부 … 여객항만·조선소·함대가 나란히
러시아 연해주 주도(州都) 블라디보스토크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곳에 한·중·일 등 동북아 정상들을 초청해 매년 9월 '동방경제포럼'을 열고 있다. 해외 투자를 유치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극동의 철도, 해운 등 물류 요충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금각교(1104m)를 건너면 닿는 루스키섬에 최신식으로 지은 극동연방대학교에서 동방경제포럼이 열린다. 사진=정상균 기자


【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정상균 기자】 북극해를 지나는 북극항로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에 닿는다. 천혜의 요새와 같은 항만은 이질적이지만 조화롭다. 곡물과 수산물·광물을 실은 컨테이너와 벌크선이 오가는 상업항만, 크루즈가 정박하는 여객항만, 수리 조선소, 러시아 극동 태평양함대가 폭이 600m 정도 되는 만을 끼고 나란히 모여 있다. 이달 초 찾은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은 분주했다. 유라시아를 잇는 철도(시베리아횡단철도), 바닷길(5대양 연결 해운노선)은 모두 블라디보스토크가 종착지다.

블라디보스토크 도심과 루스키섬을 잇는 금각교 아래로 화물 선박은 쉴새 없이 오갔다. 우리 해운사 중에는 현대상선, 장금상선, 고려해운이 주 1~3회 운항한다. 부산에선 이틀 정도 걸린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사 바로 옆에 붙은 여객터미널에는 중국, 일본에서 온 크루즈가 정박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에서 여객터미널을 운영하는 나고르느이 발레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일 기자와 만나 "크루즈선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올해 4~5월 한번씩 들어왔다. 9월에 더 큰 크루즈가 오기로 돼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심을 깊게 하는 증설공사를 9월부터 시작한다. 여객터미널 증설 공사가 끝나면 '로열 캐리비안 크루즈(승선인원 5000여명)'도 들어올 수 있다. 한국에서 오는 여행객들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남북 경협이 본격화되면 부산과 속초, 북한 금강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오가는 크루즈도 현실이 될 수 있다.

바닷길뿐 아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항공편(러시아 1개, 한국 항공사 5개)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5월과 비교해 승객수가 40% 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2년째 무역업을 하는 김택동 페트콤 사장은 기자와 만나 "이곳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관광객이 많이 늘었는데 올해 20만명이 찾는다고 한다. 매년 두배씩 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인구(60만명)의 3분의 1이다. 유엔의 경제제재로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에 북한 선박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3500t급 북한 화물·여객선 만경봉호가 들어왔다. 나고르느이 CEO는 "북한 배가 지난해 6~8월에 왔었다. 당시 한번에 승객 100명 정도 오기로 했는데 10~20명 정도 안됐다. 올해는 북한 선박이 한번도 입항하지 않았다"고 했다.
[Big Change] 러 극동개발의 심장부 … 여객항만·조선소·함대가 나란히

■'푸틴의 야망' 극동 경제개발

러시아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과 극동지역에 경제선도개발구역을 만들어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한·러 정상이 지난 22일 합의한 공동성명(총 32개항)에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강력한 극동·시베리아 지역의 경제 개발 의지가 확인됐다.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은 지난 2000년, 선도개발구역은 2015년부터 시작했다. 선도개발구역은 연해주 4개, 하바롭스크주 3개 등 극동지역에 18개가 있다. 투자 기업에 법인세(10%이하) 등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경제개발특구다. 러시아 극동개발공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1000개 가까운 기업이 투자(신청 기준)했다. 선도개발구역에 272개사, 자유항에 700개사 이상이다. 현재까지 전체 투자규모(신청 기준)는 선도개발구역 2조1320억루블(약 37조8600억원),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4330억루블(약 7조6900억원)이다. 이를 통해 창출되는 일자리는 7만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선도개발구역 제도 시행령이 완성된 지 2년밖에 안돼 외국기업들의 실제 투자액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자유항·선도개발구역에 투자한 90% 이상이 러시아 기업이다.

그나마 외국 투자기업 중에선 중국이 가장 발빠르다. 극동지역 외국인 투자의 60% 이상이 중국인 투자다. 중국은 아무르주에 시멘트공장을 지었다. 또 중국 최대 국영 식품회사 코프코(COFCO)가 농업 사료가공·식품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일본은 엔지니어링기업 JGC그룹이 하바롭스크에 대형 온실농장, 블라디보스트크에 병원을 운영한다. 특히 일본 자동차기업 마쓰다는 블라디보스토크 항만 인근에 승용차 조립공장을 투자했다. 마쓰다는 이곳에 자동차 엔진 제조공장(1만대 생산규모)을 건설 중이다.

우리나라는 LS그룹의 LS네트웍스가 블라디보스토크 동쪽의 볼쇼이카멘에 호텔을 건설한다. 현재 설계가 거의 마무리 단계다. 이 곳은 러시아 정부가 극동 최대 규모로 확장하고 있는 즈베즈다 조선소를 끼고 있는 도시다. 또 용접봉 생산회사인 현대종합금속은 블라디보스토크 항만 인근에 용접봉 생산공장 가동을 준비 중이다.

■러, 9월 동방포럼에 남·북·중·일 정상 초청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을 가르는 금각교(1104m)를 건너면 루스키섬이다. 테크노파크, 의료클러스터 등을 조성해 극동개발의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러시아 정부의 그림이다. 이곳에는 120년 역사의 극동연방대학교(1899년)가 있다. 해변을 껴안듯 조성된 현대식 캠퍼스는 러시아 극동 발전의 상징적인 곳이다. 푸틴 대통령의 극동 개발 야심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2015년부터 매년 9월 이곳에서 동방경제포럼이 열린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올해 동방경제포럼(9월 11~13일)에 한국·북한·중국·일본 등 동북아 정상들을 모두 초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참석은 확정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 참석한다면 남·북·중·러·일 5국 정상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이는 빅 이벤트가 연출된다.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을 가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의 힘을 과시할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스리스키만을 건너 맞은 편 볼쇼이카멘시에 즈베즈다 조선소가 있다.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인 로즈네프 소유다. 러시아 극동 최대 조선소를 키우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현재 현대화 및 확장 사업이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 계열의 현대삼호중공업 등 우리기업들도 합작해 협력하고 있다.


양장석 KOTRA 블라디보스토크 무역관장은 "한국 기업들이 연해주 등 극동지역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다만 인프라 부족, 제도적 여건이 덜 갖춰져 있고 승인 절차 등에 어려움이 있어 투자를 쉽게 결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고 한·러, 남북간 경제협력 기대감이 커지면서 우리 기업들의 진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