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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北을 확실한 개방으로 이끌자

김정은 위원장 의지 보여
불가역적 대세로 굳히면 핵 미련 버릴 확률도 커져

[구본영 칼럼] 北을 확실한 개방으로 이끌자


지난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는 사뭇 파격적이었다. 북한 권력의 심장부인 노동당 청사에서 회담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시민들이 이용하는 대중식당으로 안내했다. 이는 외신들에게도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AP통신은 "정상회담은 김정은이 북 주민에게 보여주는 '대극장'"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북한식 '극장 정치'로 본다면 김 위원장의 연출 의도는 성공적이었다. 북이 더는 '철부지 금수저'가 이끄는 은둔왕조가 아닌, 정상국가임을 과시하면서 주민들에겐 "북한 경제부흥을 이끌 중추적 인물임을 보여주려 했다"(AP통신)면 말이다.

물론 북한이 핵을 내려놓을지를 놓고 아직 전망은 엇갈린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약했다"고 밝혔다. 방미 중인 25일 미 외교협회 행사에선 "속임수를 쓰다가 미국의 보복을 어떻게 감당하겠나"라는 김 위원장의 말도 전했다. 반면 보수 야권은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없는 공허한 선언"이라고 '평양선언'을 평가절하했다. 미국 내 기류도 엇비슷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좋은 소식을 들었다"고 반색했지만, 미 의회와 전문가들 사이에 회의론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쪽에서도 김 위원장의 개방 의지는 감지했을 것이다. 그가 '서울 답방'까지 약속하지 않았나. 체제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선택이다. 얼마 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현 여권의 '20년 집권론'을 거론해 정치적 논란을 불렀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30대인 김 위원장이 50년을 더 집권한다고 한들 토를 달 분위기도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 정권의 붕괴를 전제로 한 지난 정부의 '통일 대박론'보다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론'이 현실성은 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가 개방의 대도로 계속 걸어 나오도록 하는 게 우리 입장에서도 바람직하다. 남한과의 협력으로 북한 경제를 살리겠다는 신호를 일단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개방이 불가역적 흐름을 탈 때 북한이 핵 보유 미련을 떨쳐낼 확률도 커진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다만 북이 체제의 안위를 보장받지 않아도 100% 핵카드를 내려놓으리라고 보는 '소망적 사고'는 경계해야 한다. 북한이 왜 핵 개발에 나섰겠나. 동구권의 붕괴 이후 남한으로 흡수통일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필사적 선택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안보론자들은 적화통일을 바라는 세습정권의 과대망상에서 비롯됐다고 보기도 한다.

현 시점에서 어느 쪽이 맞는지는 단정하긴 어렵다. 분명한 건 북한의 비핵화와 내부 개혁 없이 통일은커녕 평화 공존도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라.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와 북한의 세습독재 체제를 등가로 놓고 이를 보태 2로 나누는 제도적 통합이 가능한 일인가. 더욱이 혹여 남한이 '핵 인질'이 된 상태에서 분단이 고착화된다면 그야말로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된다.

그렇다면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투 트랙 위의 문재인정부가 꼭 유념해야 할 사안이 있다.
우선 핵 신고 리스트 제출 등 북핵 폐기와 연계해 남북 교류협력의 '빅 픽처'를 그려야 한다는 점이다. 경협 디자인도 시장화와 인권개선 등 북 내부 개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짜야 함은 불문가지다. 때로 상충될 수 있는 이 두 목표를 좇는 일이 쉬운 일일까. 여권과 야당이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는 초당적 대북 접근에 합의해 그 동력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일지도 모르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