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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는 존재, 인간.. 파로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展

세계 16개 도시 노동현장 촬영.. 노동 자체의 의미 되돌아보게 해

노동하는 존재, 인간.. 파로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展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전시장 전경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 인류가 시작된 순간부터 인간은 늘 노동하는 존재였다. 그것이 수렵과 채집이 됐든, 농사와 목축, 그리고 공장,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든 말이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먹고 살기 위해 인류는 노동을 생존의 방식으로 택했다. 가사 노동까지 포함하면 노동은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는 삶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미래학자들이 앞으로의 인류는 노동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으니 어쩌면 지금은 인간이 노동을 하는 역사의 끝자락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더욱 이 시점에서 노동하는 우리 자신과 노동의 의미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중인 전시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인류의 역사를 지배해온 노동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14년 타계한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미디어아티스트, 그리고 비평가였던 하룬 파로키는 그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생에 걸쳐 노동과 전쟁, 테크놀로지의 이면을 추적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첫 전시작품인 '인터페이스'(1995년)를 비롯해 컴퓨터그래픽 이미지의 세계를 분석한 '평행'시리즈, 그리고 그의 사후에도 아내이자 큐레이터인 안체 에만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노동의 싱글 숏' 프로젝트 등 모두 9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 가운데 전시장의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의 싱글 숏'은 하룬 파로키와 안체 에만이 2011년부터 시작한 워크숍 프로젝트로, 제목대로 세계 곳곳의 노동현장을 단일 숏으로 촬영·제작했다. 하룬 파로키가 타계하기 전인 2014년까지 15개 도시에서 촬영됐으며 2017년부터 안체 에만에 의해 다시 촬영이 시작돼 3개의 도시가 추가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생전에 제작된 15개의 영상과 더불어 2017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추가 제작된 영상이 전시된다. 관람객들은 생존을 위해 일하는 16개 도시 사람들의 노동을 바라보며 인간이 공통으로 직면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인위적인 편집이 배제된 하룬 파로키의 노동 이미지는 픽션이나 다큐멘터리로 분류되지 않으며 정치적 선전의 도구도 아니다. 작가는 '노동의 싱글 숏'을 통해 관람객들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노동 자체를 바라보게 한다.


이와 더불어 2006년작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노동을 마치고 그 현장을 벗어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목해 보여줌으로써 '노동의 싱글 숏'과 대조를 이룬다. 이 작품은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최초의 기록영화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모티브 삼아 영화사 110년간 제작된 수많은 영화 속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은 그들의 노동현장, 시설, 근로조건을 상상하게 하는 한편 군중의 모습으로 규합된 단체 이미지와 이내 흩어지게 되는 개인의 이미지를 동시에 담고 있어 흥미롭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