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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금주법

조선시대 역대 왕들은 금주령을 내리는 일이 잦았다. 가뭄·홍수 등으로 기근이 닥쳤을 때 식량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금주령은 지방에서는 엄격히 시행됐다. 그러나 서울의 사대부나 관료사회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공·사의 연회가 금지되고, 과도한 음주나 주정 등의 행위를 제재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21대 영조는 달랐다. 1758년(영조 34)에 큰 흉년이 들자 몸소 홍화문(창경궁 정문) 앞에 나가 백성들에게 금주윤음(禁酒綸音)을 선포했다. 궁중의 제사에 술 대신 차를 쓰게 했으며, 몰래 술을 마시다 적발되면 사형에 처했다. 나중에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여 형벌을 귀양 또는 관직박탈 정도로 낮추긴 했으나 여전히 음주자를 중벌로 다스렸다.

미국에서도 1920년대는 금주법 시대로 불린다. 당시 미국의 맥주 양조업은 독일계 미국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술의 제조·운송·판매 등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18조와 볼스테드법을 시행했다. 청교도의 영향과 전범국가인 독일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 그러나 집안에서 하는 음주는 단속할 방법이 없었다. 금주법은 마피아 등 범죄집단이 더욱 활개 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국 1933년 미국은 금주법을 폐지했다. 그러나 아직도 노스캐롤라이나 등 일부 주들은 실외음주를 주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국립공원 내의 대피소와 탐방로, 산 정상 등에서 음주가 금지되고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리고 있다. 음주감경 제도(형법 10조2항) 폐지론도 나오고 있다. 불법을 저지를 때 술을 마시면 형벌을 감해주는 것은 법이 음주를 우대·권장한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조경태 의원(자유한국당)은 이런 불합리를 고치기 위해 지난주 이 조항을 폐지하는 형법개정안을 발의했다. 음주운전자 가중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보건복지부는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제한하는 국민건강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공공청사와 병·의원, 초·중·고교 등 전국 14만8227곳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하루 평균 13명이 음주운전과 알코올 질환으로 숨졌다. 우리 사회는 음주의 즐거움보다 개인의 안전과 다른 사람의 쾌적함의 가치를 우선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