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농어촌상생기금, 기업에 손벌리지 마라

관련종목▶

국회와 정부가 15일 대기업에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을 요청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이날 삼성·현대차 등 15개 대기업 경영진을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엔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도 나왔다. 간담회 형식이지만 실제론 압력이다.

농어촌상생기금은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를 둔다. 이에 따라 지난해 3월 기금이 출범했다. 해마다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을 쌓는 게 목표다. 실적은 형편없다. 현재 1년8개월이 지났지만 적립금은 수백억원에 그친다. 그마저 대부분 공기업이 냈다. 누굴 탓하겠는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대기업들은 극도로 몸을 사린다.

기금은 처음부터 말썽이었다. 박근혜정부 때인 2015년 12월에 여야는 돌연 농어촌상생기금 조성에 합의했다.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준하는 대가로 무역이익공유제를 요구했다. 재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그 절충안으로 나온 게 바로 상생기금이다. 집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한·중 FTA 비준이 급한 나머지 기금 설치에 동의했다. 여당은 김무성 대표, 야당은 문재인 대표가 이끌던 시절이다. 당시 김무성 대표는 1조원짜리 상생기금이 "기업엔 준조세가 되고, 나중에 기부금이 부족할 땐 정부에 재정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 돌아가는 모양이 꼭 그렇다.

상생기금은 정부가 할 일을 기업에 떠넘기는 격이다. 어떤 기업이 FTA 혜택을 입었다고 치자. 그 기업은 이익을 올린 만큼 세금을 더 낸다. 정부는 그 세금으로 피해를 본 농어촌을 지원하면 된다. 이게 시장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다. 수출기업더러 직접 농어촌을 지원하라고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상생기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익을 나누라는 협력이익공유제만큼이나 반시장적이다.

상생기금은 어느모로 보나 준조세다.
국회 농해수산위 간담회를 두고 '권력형 앵벌이'란 비아냥까지 나온다. 자유한국당 김태흠 의원(충남 보령시 서천군)은 "정권이 바뀌어도 재판정에 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에겐 이 말이 더 무섭다. 이들의 귀엔 "정권이 바뀌면 재판정에 설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말로 들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