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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코오롱 이웅열 회장의 용퇴가 주는 울림

"창업가로 새롭게 출발" 선언
변화 거부하는 풍토에 경종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28일 내년 1월부터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1996년 코오롱 경영권을 승계했다. 회장에 오른 지 23년 만에 스스로 경영권을 내놓는 셈이다. 그는 올해 62세다. 상식적으로 보면 그는 적어도 10년은 더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돌연 경영권을 내놨다. 왜 그랬을까.

이 회장은 자신을 금수저라고 인정했다. 그는 재벌 3세다. 창업주 할아버지 이원만, 2세 아버지 이동찬의 뒤를 이어 코오롱을 이끌었다. 코오롱은 자산기준 재계 순위 31위의 기업집단이다. 그는 임직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코오롱 밖에서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본심은 그 뒤에 나온다. 이 회장은 "세상이 변하고 있고, 변하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한계를 토로한다. "매년 시무식 때마다 환골탈태의 각오를 다졌지만 미래의 승자가 될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불현듯 내가 바로 걸림돌이구나, 내가 스스로 비켜야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솔직한 고백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기업, 다른 경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반세기 한국 대기업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끈 주역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과거의 놀라운 성공이 지금은 오히려 짐이 됐다. 이른바 성공의 저주다. 한국 제조업은 기득권의 벽에 둘러싸인 채 작은 변화도 거부하고 있다. 조선이 그렇고, 해운이 그렇고, 자동차가 그렇다. 이 회장은 분신이나 다름없는 코오롱그룹에 대해 "10년 전이나 5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넥스트 미(Next me)' 없이 미래는 없다고 그렇게 외쳐도 메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더 늦기 전에 "창업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은 원인 중 하나로 기업가정신 실종이 꼽힌다. 60대 초반의 이 회장이 새로운 창업가 모델을 선보이길 기대한다.

이 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코오롱의 1대 주주 지분(49.74%)을 유지한다.
또 아들 이규호 상무(35)를 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로 승진시켜 그룹의 패션사업을 총괄토록 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이 회장의 퇴진을 4세 경영체제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퇴한 이 회장이 코오롱그룹, 나아가 재계 전반에 던진 메시지는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