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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 박병대·고영한, 대법관 출신 첫 구속 면해

'사법농단 의혹' 박병대·고영한, 대법관 출신 첫 구속 면해
박병대 전 대법관(왼쪽)과 고영한 전 대법관/사진=연합뉴스

'사법농단' 연루 의혹으로 헌정 이래 처음으로 전직 대법관들에 청구된 구속영장이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는 전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어 구속 필요성을 심리한 후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우선 박 전 대법관의 혐의를 심리한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에 대해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고,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돼 있는 데다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및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의자의 주거 및 직업,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 현단계에서 구속사유나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고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심사를 진행한 뒤 "이번 사건 범행에서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피의자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뤄졌다"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헌정 이래 처음으로 대법관을 상대로 청구된 구속영장은 결국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청구서의 분량만 각각 158쪽, 108쪽에 달할 정도로 검찰은 심혈을 기울였으나 허사로 돌아갔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3일 이들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법원에 접수했다.

2014년 2월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형사재판 △옛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등 여러 재판에 개입하거나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내용의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2015년 문모 당시 부산고법 판사의 비위 사실을 검찰로부터 통보받고도 징계 절차를 밟지 않은 직무유기 혐의를 받는다. 고 전 대법관 역시 이듬해 문 판사가 '스폰서'였던 건설업자 정모씨의 형사재판 정보를 누설하려 한다는 비위 첩보를 보고받고 징계하지 않았다.

박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 전 대법관은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판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정보를 빼내고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 혐의를 받는다.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서울서부지검의 집행관 비리 수사 때도 일선 법원을 통해 검찰 수사기밀을 보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 위상을 유지하려고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를 수집하면서 박한철 당시 헌재 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한 언론사 기사를 대필하게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이밖에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계속 관리·실행한 혐의도 있다.

이날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법원은 국민이 희망을 얻고 위로받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며 대법관은 바로 그런 권위의 상징"이라며 "전직 대법관이 구속되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믿음과 희망이 꺾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대법관께서 사실 대로 진술하셨다. 재판부에서 현명한 판단 내려주실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

두 전직 대법관은 주요 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입장이어서 향후 재판에서 검찰과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